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가 청와대에서 하기로 했던 오찬 회동이 무산된 16일 윤 당선자가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의 16일 첫 만남이 무산됐다. “국민 통합”을 한목소리로 외친 현직 대통령과 차기 당선자의 청와대 회동이 예정 시각을 불과 4시간 앞두고 돌연 연기된 것이다. 벌써부터 신-구 권력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지켜보는 국민의 가슴은 무겁다.
청와대와 당선자 쪽은 “실무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고만 했을 뿐, 회동 무산의 구체적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둘러싼 양쪽의 이견과 공공기관 인사권 논란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이들이 많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당선자 측근들이 회동 의제가 조율되기도 전에 논의 안건을 언급할 때부터 징조가 불안했다. 특히 국민들 사이에 찬반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 전 대통령 사면을 당선자도 아닌 참모가 공개적으로 거론해 수용을 압박하고,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 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연계 사면까지 ‘조롱조’로 언급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했다.
한국은행 총재 등 문재인 정부 임기 말에 있을 공공기관 인사에 대해 양쪽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건 충분히 조율 가능한 부분이라고 본다. 윤 당선자 쪽이 전날 공공기관 인사 협의를 요청했지만, 청와대 쪽은 “남은 임기인 5월9일까지 문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게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새로 임명해야 할 공공기관장은 인사권이 현 정부에 있더라도 실제 업무는 새 정부와 손발을 맞춰야 하는 만큼, 당선자 쪽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진행하는 게 옳다. 하지만 임기가 남은 권력기관장이나 공공기관 인사들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사퇴를 압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검찰 독립성을 강조해온 윤 당선자 쪽이 측근 권성동 의원을 통해 김오수 검찰총장에게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공개 압박한 것은 누가 봐도 선을 넘은 행동이다. 국민의힘이 전날 국회 상임위원회별로 정부부처·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문재인 정부 임기 말 알박기 인사 현황’ 전수조사에 들어간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윤 당선자 쪽이 호언했던 ‘점령군 행세’와 무엇이 다른가.
정권 교체기에 신-구 권력의 갈등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지만, 국민을 먼저 생각한다면 양쪽 모두 조심해야 한다. 특히 윤석열 당선자 쪽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정권 인수인계란 현 정부의 예산·조직·현안 등을 충분히 파악하고 새 정부의 우선 정책 순위를 정해서, 정부 출범 직후부터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다. 윤 당선자 쪽이 현 정부에 ‘사면을 하라 마라’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건 오만으로 비친다. 조용하고 치밀하게 정권 인수를 준비해서, 필요하면 새 정부 출범 후에 스스로 집행하면 될 일이다. 지금 신-구 권력 간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건 대선 기간 증폭된 진영 간의 불신과 증오를 불필요하게 키울 뿐이란 점을 윤 당선자는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