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5월10일 취임 이후에도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고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집무실을 당분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이 밝혔다. 김 대변인은 21일 저녁 “윤 당선인은 통의동에서 정부 출범 직후부터 민생 문제와 국정 과제를 처리해나갈 것”이라며 “5월10일 0시부로 청와대 완전 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청와대는 같은 날 오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안보 공백’ 등을 이유로 ‘취임 전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취임 전에 용산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옮기는 것이 사실상 어렵게 되자, 윤 당선자가 그렇더라도 청와대에는 단 하루도 머물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밝힌 것이다.
김 대변인은 22일에도 ‘통의동 집무’ 방침을 재확인하고 윤 당선자가 취임 뒤 당분간 서초동 자택에서 출퇴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의동 집무 기간은 취임 뒤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기까지 두달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윤 당선자는 통의동에 머무르는 기간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청와대 지하 벙커의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통의동 집무실은 방탄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아 경호상 중대한 취약점이 있다. 집무 공간이 좁아 참모들이 한데 모여 국정을 논의하기도 어렵다. 또 서초동 자택과 통의동 간 12㎞를 매일 출퇴근할 경우 시민들의 불편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 첫 몇달은 국정 과제 추진의 ‘골든타임’인데, 윤 당선자는 이 귀중한 시간을 길에서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집무실 이전 때까지만 청와대에서 집무를 하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문제들이다.
도대체 윤 당선자가 왜 이렇게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청와대 바깥에 머물겠다고 하는 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윤 당선자는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는데, 청와대가 무슨 감옥도 아니고 왜 자꾸 못 나온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이쯤 되면 오기나 아집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민 여론도 악화하고 있다. 22일 ‘미디어토마토’의 여론조사에서, ‘용산 이전’에 대한 반대가 58.1%로 찬성(33.1%)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95% 신뢰수준, 오차범위 ±3.1%포인트) 지금으로선 취임 뒤 당분간 청와대에 머물면서 국민 여론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합리적인 이전 계획을 마련해 실행하는 게 순리다.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길이기도 하다.
윤 당선자가 민심을 못 읽고 독주하는 데는 직언은커녕 민심을 오도하는 측근과 국민의힘 지도부 책임도 크다. 집무실 이전을 주도한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은 청와대를 향해 “안보 공백을 운운하는 자체가 굉장히 역겹다”고 했다. 졸속 이전에 가장 책임이 큰 데도 반성은커녕 막말을 내뱉다니 뻔뻔하기 짝이 없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제2의 광우병 선동”이라느니 “대선 불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느니 하며 비판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 윤 당선자가 이런 사람들의 말만 듣고 국민의 뜻을 외면한다면 취임도 하기 전에 민심의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