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0일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24일 끝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스스로 파기한 것이고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강력히 규탄했다. 한국의 정권교체기에 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으면서 한반도 정세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은 이날 오후 2시34분께 평양 근처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고도 6200㎞, 사거리 1080㎞로 발사했다. 각도를 높여 ‘고각 발사’를 했기 때문에 실제 사거리는 미국 전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1만~1만5천㎞로 추정된다. 우리 군은 지대지미사일인 현무-Ⅱ와 에이태큼스(ATACMS) 등을 발사해 대응했다.
북한이 4년4개월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북-미 간 신뢰의 상징적 조처였던 모라토리엄이 깨지게 됐다. 북한은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진전되던 2018년 4월 자발적으로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대표적 성과로 꼽혀왔다. 이제 그 성과가 흔들리면서 한반도 정세가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7년 말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의 정권교체기에 한반도 정세를 강대강 대치로 몰고 가는 북한의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이번 발사에 이어 다음달 한미연합훈련과 4월15일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에 맞춰 고강도 도발을 이어갈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은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느라 당분간 대북 대화에 나서기 어렵고,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추가 제재에 동의할 가능성이 낮은 점을 활용해 최대한 힘을 키우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힘을 통한 평화’를 내세운 윤석열 당선자도 대북 압박 강화를 예고하고 있다. 남북이 위태로운 대치 국면으로 치닫고, 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군비 경쟁의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이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더 이상 사태를 악화시키지 말고 대화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 정부도 단호하게 대응하는 한편 관련국들과의 긴밀한 외교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는 조속히 만나 대응 방안을 논의하면서 안보 공백이 없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