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0일 밤 도쿄의 자민당사에서 당선자들의 이름에 종이꽃을 붙이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사망 이틀 뒤인 10일 치른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의 대승이 확정된 직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되도록 빨리 (개헌안을) 발의해 국민투표로 연결하고 싶다”고 밝혔다. 전후 75년간 유지되어온 평화주의의 상징인 일본 헌법 9조의 개정 여부를 포함한 개헌 문제는 한일관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정세를 요동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 직후 나온 개헌 의지 언급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이번 선거 결과 자민당을 비롯해 개헌을 지지하는 4개 정당의 전체 의석수는 177석으로 늘어,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166석)을 훨씬 넘어섰다. 이날 밤 <엔에이치케이>(NHK)가 주요 정당 대표를 연결해서 한 인터뷰에서 대부분 ‘개헌’ 문제가 언급된 것은 개헌 논의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기시다 총리가 “구체적인 내용에서 3분의 2가 모여야 한다”고 한 것은 ‘헌법 9조’를 바꾸는 문제에 이견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헌법 9조는 전쟁 포기, 전력 보유와 교전권 불인정을 규정하고 있는데, 사실상의 군대인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규정하자는 개헌 방안에 대해 자민당과 연립여당 안에서도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개헌을 ‘필생의 과업’이라 말해온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익 세력이 결집해 헌법 9조를 개정하고 본격적인 군비 증강의 길로 나아가려는 동력이 커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군사력 강화, 북한 핵·미사일 능력 증강 등으로 안보 불안이 커지면서 일본 내에서 개헌 지지 여론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한편에선 선거 승리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한 기시다 총리가 아베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강경 노선에서 벗어나 점차 온건 보수 정책을 실현해 나가리라는 기대도 있지만, 단기간에 일본 정부의 한국 정책이 크게 바뀔 것으로 예단하지는 말아야 한다. 일본 시민들이 안보 불안이 커질수록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한 현실을 직시하고, 역사에 대한 반성과 평화헌법 위에서 이웃국가를 배려하는 현명한 길을 선택하기 바란다.
정부는 한덕수 국무총리 등 사절단을 일본에 파견하는 ‘조문외교’를 준비하고, 박진 외교부 장관의 방일도 다시 추진 중이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중요하지만, 복잡한 일본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차분한 대일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