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반도체 산업 생태계와 인재수요’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앞으로 10년 동안 반도체 관련 인력 15만명을 추가 양성하기 위한 방안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7일 “교육부의 첫번째 의무는 산업 인재 공급”이라며 반도체 인재 양성을 주문한 지 한달 남짓 만이다.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취임한 지는 보름도 채 되지 않았다. 실무적인 난제도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교육이라는 위상과 가치에 걸맞게 신중한 논의와 종합적인 검토를 거쳤는지 의문이다.
19일 정부 발표를 보면, 2031년까지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를 통해서만 4만5000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대학원 1100명, 일반대학 2000명, 전문대학 1000명, 직업계고 1600명 등 모두 5700명의 정원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31년까지 반도체 관련 학과 누적 졸업생은 45만7800여명에 이를 거라고 한다. 나머지 10만5000명은 정원 확대가 아닌 직업계고, 학·석·박사, 재직자에 대한 재교육 등 재정 지원 사업을 통해 확보할 계획이다.
정부의 목표치는 반도체산업협회가 올해 추산한 10년간의 국내 반도체 산업 추가 인력 수요(12만7000명)를 반영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케이(K)-반도체 전략’과 함께 내놓은 3만6000명 양성 계획보다 4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협회의 추산치는 반도체 산업이 해마다 5.6%씩 성장하는 것을 가정한 거라고 한다. 반도체 산업이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데다 ‘칩4동맹’ 같은 글로벌 블록화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것 등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이다. 자칫 전망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수많은 학생이 졸업 뒤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대학설립·운영 규정’상의 규제를 완화해 대학들이 쉽게 반도체 관련 학과의 신·증설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교육에 필요한 기준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건데, 가뜩이나 부실하다는 평가가 많은 우리 대학들의 교육 수준이 더욱 저하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수도권 대학 정원 총량을 제한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은 이날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지역에 상관없이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하면 결국엔 비수도권 대학들이 타격을 받게 된다.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크게 늘리면 인문학을 비롯해 많은 학과가 존폐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 교육이 산업과 무관하지 않지만, 윤 대통령처럼 ‘먹거리’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학문의 퇴행을 피할 수 없다. 교육을 ‘백년대계’라 부르는 이유를 되새겨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