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석 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선고를 앞두고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수사·정보기관이 통신사로부터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도 당사자에게 이를 통지하지 않아도 되는 통신자료 조회 제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21일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통신자료’는 이용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을 일컫는 것으로, 언제 어디서 누구와 통신했는지에 관한 정보인 ‘통신사실확인자료’와 달리 영장 없이 수집할 수 있고 사전·사후 통지 의무도 없다. 오랫동안 오남용 우려가 제기됐던 이 제도의 위헌성을 헌재가 뒤늦게나마 확인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헌재는 “당사자에 대한 통지는 기본권 제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 정당성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현행 제도는) 정보 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통신사가 검찰·경찰·국가정보원 등에 제공한 통신자료는 2021년 504만456건 등 해마다 500만건이 넘는다.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언론인·정치인 등의 통신자료 100여건을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됐지만 그 이전부터 검찰·경찰·국정원 등이 광범위하게 이용해온 제도다. 이미 2016년 <한겨레> 기자 등 시민 500명은 국정원 등의 무차별적 통신자료 수집 사실을 확인하고 헌법소원을 냈다. 이번 헌재 결정에 만시지탄을 느끼는 이유다.
통신자료 조회와 관련한 또 하나의 논쟁점은 통신사실확인자료와 같이 법원에 의한 사법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헌재는 수사·정보기관의 통신자료 요청이 강제성을 띤 것은 아니므로 법원 영장은 필요없다고 판단했다. 실제 전기통신사업법은 통신사가 통신자료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통신사들이 수사·정보기관의 요청을 거절하기도 힘들고 그런 사례도 거의 없다. 헌재가 이런 현실에 눈감은 채 사법적 통제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대목이다. 사후 통지만으로 오남용 가능성이 얼마나 제거될지도 의문이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내년 12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현행법의 효력이 유지되고 그 안에 대체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들 역시 통신자료 조회에 대한 사후 통지만 규정해 미봉에 그치고 있다. 국회는 헌재의 결정 취지를 반영하는 것은 물론 한발 더 나아가 사법적 통제 방안까지 보완된 입법을 서둘러 추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