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한 조합원이 23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앞에서 열린 ‘7.23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문화제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격려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거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지난 22일 파업을 끝냈다. 만 50일간 겪은 극한의 고초에 비하면, 합의한 내용이 노동자들에게 결코 유리하다 할 수 없다. 그나마 ‘임금 4.5% 인상’과 금액이 정해지지 않은 연 3회 상여금 지급을 빼면, 대부분 노사가 앞으로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다. 당연히 대화가 중요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파업 타결 직후 “불법점거 과정에서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화 분위기 조성과는 거리가 멀다.
하청노동자들은 2016년 이후 삭감된 임금 30% ‘회복’이라는 핵심 요구마저 철회했다. 조선업계에 만연한 부조리를 바로잡지 않으면 임금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세계 1위를 다투는 우리 조선업계의 실상은 다단계 업계나 다름없다. 하청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을 받고 중노동을 하는 구조의 정점에 대우조선해양 같은 원청업체가 있다. 개별 하청업체를 상대로 아무리 임금인상을 요구해봐야 원청 핑계에 막히기 일쑤다. 불황기로 접어들기가 무섭게 임금이 깎이고, 호황기엔 가장 늦게 빛이 드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는 조선업계에 울리는 다급한 위험신호이기도 하다. 하청노동자들을 고용한 하청업체 가운데 파업 전부터 임금을 체불하고 4대보험료를 장기간 내지 못한 업체가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현장 인력이 빠르게 노령화하는데도 신규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조업을 사실상 떠맡고 있는 하청업체의 위기는 원청업체를 넘어 조선업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앞장서 고질적인 병폐를 바로잡는 것이다.
팔짱만 끼고 있던 정부가 뒤늦게 ‘불법행위 엄정 대응’을 강조하며 파업에 따른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원·하청 사쪽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협상 타결을 지연시켰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민형사 책임을 가혹하게 묻는 것과 반대로, 경영계에는 경제형벌 규정을 없애거나 행정제재로 전환하겠다며 선물 보따리를 풀고 있다.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책임을 저버린 채,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가파르게 만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파업 타결 전 입장을 고수한다면 조선업의 구조적 문제를 풀 기회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때보다 대화가 절실한 시간이다. 정부의 태도 변화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