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며 지난 6월2일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하이트진로지부 노조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사옥 옥상 광고판과 1층 로비를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하이트진로의 소주·맥주를 운송하는 화물기사들이 16일부터 하이트진로 사옥 옥상 광고판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회사가 파업에 참가한 화물기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과 해고(계약 해지)를 철회하라는 게 핵심 요구다. 자회사와 하청업체 소속인 화물기사들이 지난 3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 가입한 데 이어 6월2일부터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사쪽은 27억원 규모의 손배소와 가압류로 응수했다. 파업 노동자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악용돼온 손배·가압류가 또다시 노동자들을 벼랑 끝 고공 농성으로 내몬 것이다.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소는 헌법과 국제인권법이 보장하고 있는 단체행동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악습으로 지목돼왔다. 소송 자체가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하고,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실제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노조를 굴복시키려는 목적으로 손배·가압류를 남발해왔다. 지난달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때도 원청인 대우조선은 일찌감치 7천억원대 피해를 거론하며 천문학적인 규모의 손배소 카드로 노조를 압박했다. 파업이 끝난 지난달 22일에는 파업 피해를 8천억원대로 집계했다. 그러나 이런 피해 규모는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것이다. 파업 당시 거제 옥포조선소의 도크(배를 만드는 작업장) 5개 중 조업을 멈춘 곳은 한 곳뿐이었는데, 모든 조업이 중단된 상황을 가정해 피해 금액을 산정한 것이다. 피해를 최대한 부각시켜 파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에선 정당한 요구를 내건 파업일지라도 ‘불법’의 굴레를 벗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노동법과 법원 판례가 ‘합법 파업’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정하고 있는 탓이다. 특히 법원은 ‘점거’ 등 겉으로 드러난 불법 행위에만 엄한 잣대를 들이댈 뿐, 사용자의 교섭 회피 등 ‘불법’에 이르게 된 과정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하이트진로 화물기사 파업 과정에서도 과거 노조파괴 연루 의혹이 있는 본사 임원의 개입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합법 파업의 범위를 넓히고 손배소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이 제출돼 있다. 2015년부터 법안이 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에는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 파업 한번 하려면 소송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