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공정거래조정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출범 100일이 넘도록 공석이던 공정거래위원장 자리에 한기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18일 지명되면서 조만간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한 후보자는 가장 먼저 내정설이 돈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식 지명됐으나 성희롱 전력 탓에 스스로 물러난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마찬가지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신이다. 새 정부의 첫 공정위원장을 꼭 법률 전문가로 임명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한 후보자의 이력과 발언을 보면, 그들 가운데서 적임자를 골랐다고 볼 근거를 도무지 찾기가 어렵다.
공정거래법은 공정거래위원의 자격요건으로 4가지를 들고 있는데, 한 후보자는 ‘법률·경제·경영 또는 소비자 관련 분야 학문을 전공하고 대학이나 공인된 연구기관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자로서 부교수 이상 또는 이에 상당하는 직에 있었던 사람’에 해당한다. 형식적 요건은 갖추었다. 하지만 법학자로서 한 후보자의 이력을 보면 공정거래 업무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한 후보자는 상법과 보험법 전문가다.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위원,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을 역임하고, 보험연구원장(4대)을 맡았다. 그동안 쓴 연구논문을 봐도 보험법 관련 연구가 대부분이다. 1981년 출범한 공정위 역사에서 그동안 위원장은 관료나 공정거래법 관련 학자들이 맡아왔는데, 한 후보자가 취임하면 공정위 핵심 업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맡는 첫 사례가 될 것이다.
그가 지난 19일 출근길에 한 발언은 더욱 자질을 의심스럽게 한다. 한 후보자는 “새 정부가 추진하는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혁신하고 마음껏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막고,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주 업무인데, 엉뚱한 방향을 가리킨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연합의 경쟁당국이 빅테크나 플랫폼의 규제를 강화하는 시기에 이런 인식만이 앞서 뭘 하겠다는 건지 참으로 이상한 인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