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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또다시 드러낸 복지 사각지대

등록 2022-08-23 18:53수정 2022-08-24 11:02

22일 경기 수원시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가 거주하던 월셋방 입구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이정하 기자
22일 경기 수원시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가 거주하던 월셋방 입구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이정하 기자

지난 21일 경기 수원의 한 연립주택에 세 들어 살던 세 모녀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평소 지병으로 힘들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기댈 언덕이 되어주지 못했다. 2014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여전히 복지 시스템의 빈틈이 메워지지 않은 것이다.

숨진 이들은 함께 살던 60대 어머니와 40대 두 딸이다. 어머니는 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큰딸도 희귀 질환을 앓고 있었다. 세 모녀는 2020년 2월 경기 화성에서 현 거주지로 이사했지만, 전입신고는 하지 않았다. 주민등록상 주소를 화성 지인의 집에 둔 채 수원에서 월세를 살았다.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주소를 옮기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신청주의’에 기반한 기존 복지 시스템은 이들에게 무용지물이었다. 수원시와 화성시는 세 모녀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나 긴급복지지원 등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상담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기다리는 복지 서비스’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이번 일은 여러모로 송파 세 모녀 사건과 닮아 있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반지하방에서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이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70만원을 남기고 떠날 때도, 그들은 국가 복지 시스템의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정부는 공과금 체납 여부 등을 토대로 ‘위기 가구’를 발굴하는 제도를 마련했지만, 수원 세 모녀가 처한 위기는 이 발굴 시스템 밖에 있었다. 이들이 극심한 생활고 탓에 건강보험료를 16개월치나 연체했다고 하니, 정부 위기 대응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 드러났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복지정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안 되는, 그런 주거지를 이전해서 사시는 분들에 대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두선에 그쳐선 안 된다. 찾아가는 복지 시스템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가다듬고 사회복지 인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나 관계기관과의 정보 공유와 연계 강화책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빈곤의 절벽에서 삶을 감내하기 힘든 이들이 마지막 구호 요청을 보낼 수 있는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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