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앤지(KT&G) 사태를 계기로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 관련 제도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영권 방어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전경련 등 재계는 한층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다. 손놓고 있다가는 국내 대표기업들도 외국자본의 인수합병 대상이 될 것이라며, 적극적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도 인수합병 전문가를 포함한 태스크포스를 꾸려 검토에 들어갈 모양이다.
재계 주장에 엄살이 좀 담겨 있긴 하지만,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는지 따져볼 필요성 역시 있어 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자본시장 빗장은 지나치게 열렸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도 “투기성 외국자본을 규제할 정책이 턱없이 부족하며, 우리나라의 외국자본 규제 제도가 선진국 수준보다 완화됐다”고 진단한다. 외국자본 유치가 다급하고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등의 요구를 거부할 힘도 없던 상황에서 관련 제도 틀이 짜인 탓이 크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염두에 둬야 한다. 첫째는 기업의 지배구조에 끼칠 영향이다. 인수합병 방어에 치우치다 보면 재벌의 지배구조를 더욱 공고히해 재벌개혁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딜레마다. 사실 기업 경영이 효율적이고 투명하면 적대적 인수합병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에스케이나 삼성물산이 외국자본한테 경영권 공격을 받았던 것도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 때문이었다. 기업들이 경영 안정에 위협받고 경영권 방어에 많은 비용을 치르고 있다면 도외시할 수만도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방어막을 높여주는 게 능사만도 아니다. 이 두 상충되는 목표를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둘째는 국내 기관투자자 육성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자국 기관투자자들이 기업 경영진을 감시하면서 동시에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저지하는 우호세력 구실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국내 기관투자자가 너무 허약하다. 외국인이 국내 증시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이르지만 국내 기관투자자는 20%에도 미치지 않는다. 기관투자자 육성을 위한 종합대책이 동시에 마련되지 않으면 단순한 제도 보완만으로는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한계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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