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국 현장단체 535개가 모인 ‘여성폭력피해자지원현장단체연대’ 회원들이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철회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여성폭력의 절반 가까이를 배우자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저질렀다는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번 조사는 데이트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폭력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설계된 최초의 조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실태조사는 합당한 대책이 뒤따를 때 의미가 있다. 정부가 면밀한 분석을 통해 여성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이기 바란다.
28일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2021 여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전국 성인 여성 7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평생 동안 여성폭력 피해를 한번이라도 경험한 비율은 전체의 34.9%(2446명)로 나타났다. 여성폭력에는 신체적·성적·정서적·경제적 폭력 등이 포함된다. 피해 경험이 있는 2446명 가운데 과거 또는 현재의 배우자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한테서 피해를 당한 이가 1124명으로 46%를 차지했다. 전체 조사 대상자를 기준으로 해도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여성폭력 피해 경험 비율은 16.1%나 된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폭력에 노출돼 있음을 보여준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여성폭력은 그동안 여성단체들이 꾸준히 제기해온 문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3월, 2021년 1년간 친밀한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 최소 83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살인이 미수에 그쳐 살아남은 여성까지 포함하면 피해자는 260명으로 늘어난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집계한 게 이 정도니, 실제로는 훨씬 많다고 봐야 한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6월 경기 안산에서 스토킹 피해로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사귀다 헤어진 남성에게 살해되는 등 유사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대체로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비롯된다는 특징이 있다. 여성을 소유하거나 지배해야 할 존재로 여기는 인식이 단적인 예다.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부부·연인 간의 갈등’이나 ‘개인사’로 치부되는 등 은폐·축소되는 경향이 강하다. 여성폭력의 구조에 대한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의 몰이해 탓이 크다. 여성폭력을 근절하고 피해자를 제대로 지원하려면 여가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부처 폐지 로드맵을 만드느라 에너지를 낭비할 때가 아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