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 첫 회의에서 이철규 국민의힘 간사(오른쪽)와 박정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커피를 나눠 마시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여야가 1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를 가동하며 639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세부 심의에 돌입했다. 여야는 이미 상임위원회별 예비심사에서 격돌했고, 어느 때보다 험악한 여야 관계를 고려할 때 예산안이 법정 시한(12월2일) 안에 처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거대 야당을 상대하는 정부·여당이 예산 변동 내역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준예산’ 운운하며 벼랑 끝 대치를 예고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예산소위는 각 상임위의 예비심사 결과를 토대로 새해 예산안의 최종 증감액을 조정하게 된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에 대한 원안 사수를 강조하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과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등 ‘윤석열표 예산’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미 전날 국회 행정안전위에선 경찰국 예산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 업무추진비 삭감, 이재명 민주당 대표 관심사인 지역사랑상품권 증액 등을 놓고 여야가 정면충돌했다. 용산공원 조성과 청와대 활용 사업 등 대통령실 이전 관련 예산들도 각 상임위에서 삭감됐다. 민주당은 ‘민생예산 복원’을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예산 칼질을 통한 대선 불복”(주호영 원내대표)이라고 맞서고 있다.
여야가 예산안을 놓고 대치하는 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예산소위에서 조정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다만 여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현 상황이 예산안 처리 과정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민주당이 의석수를 무기로 실력 행사를 고집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국정의 무한 책임을 갖고 있는 정부·여당이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껏 야당 지도부와 만나지 않았고, 정부는 ‘건전 재정안’을 주장하며 삭감한 예산 24조원의 세부 내역조차 국회에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준예산 사태를 감수하고서라도 야당에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야당을 도리어 자극하고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헌정 사상 최초 준예산’을 언급했다.
국회법에 따라 11월30일까지 여야가 예산안에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 원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이를 부결시키면 올해 예산이 내년에 적용되는 ‘준예산’ 사태가 벌어진다. 예산의 우선순위는 무엇보다 ‘민생’이 되어야 한다. 여야의 기싸움에 가뜩이나 힘겨운 국민들의 삶이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