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무소속 민형배 의원, 더불어민주당 소속 양이원영·강민정·안민석·유정주·황운하·김용민 의원. 연합뉴스
입법·예산 정국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야의 대치는 날로 격해지는 모습이다. 예산안 심사에선 ‘윤석열표’ ‘이재명표’ 딱지를 붙여 증·감액 기싸움을 벌이고, 연일 증오의 언어와 막말을 퍼부으며 서로를 자극한다. 지지층 결집만 도모하는 극한 대치에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예산안 심의, 각종 민생법안 논의 등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고 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선 주말마다 ‘촛불’ 대 ‘맞불’의 진영 대결이 펼쳐진다. 19일 오후 서울 태평로 일대에선 윤석열 대통령 퇴진과 김건희 여사 특검을 촉구하는 전국집중촛불대행진 집회가 열렸다. 인근에선 보수 성향 단체가 주최한 대규모 맞불 집회가 개최됐고, “이재명·문재인을 구속하라”는 구호가 연호됐다. 격화된 진영 갈등이 광장으로 확산되는 양상인데, 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와 문재인 정부 사정 등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의 연장 성격이 강하다. 최근에는 이태원 참사 책임 규명에 미온적인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비판이 더해졌다.
여야 대립과 장외 공방은 극단화되고 있지만, 이를 중재할 정치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 통합을 최우선해야 할 윤석열 대통령은 <문화방송>(MBC) 취재 제한이 ‘헌법 수호’ 차원이라는 궤변을 내놓으며 편가르기를 부추기고,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게 보조를 맞춰 “삼성 등은 (문화방송에) 광고를 중단해야 한다”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장과 이사 전원을 해임해야 한다” 등의 거친 주장을 공개 석상에서 쏟아냈다. 민주당 의원 6명과 무소속 의원 1명이 19일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 전국집중촛불대행진’에 참석한 것 역시 논란을 빚고 있다. 이들은 집회 단상에 올라 야권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인간사냥”에 빗대거나, “10·29 참사 진짜 주범인 윤석열은 책임지라”고 주장했다. 이태원 참사 책임 규명을 촉구하는 취지라 해도, 현직 국회의원들이 장외에서 윤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것이 강성 지지층에게 호소하는 것 외에 어떤 실익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당장 국민의힘에선 이를 대선 불복으로 규정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경제·안보 복합위기는 가시화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고 입법과 예산으로 민생을 보듬어야 할 국회는 ‘대선 연장전’을 이어가며 갈등만 조장하고 있다. 민생법안 논의는 실종됐고 예산안 심사마저 여야의 기싸움에 표류하고 있다. 정치 공방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나라 안팎의 상황이 엄중하다. 여야의 맹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