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일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건설하는 반도체 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미국 제조업이 돌아왔다”고 연설하고 있다. 피닉스/EPA 연합뉴스
미국 제조업 부활을 목표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칩과 과학법’으로 인해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동맹국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제공되는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한국과 유럽연합 차량들이 배제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데 더해, 미국이 전세계 첨단산업 일자리를 ‘빨아들이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티에스엠시(TSMC)는 6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400억달러(약 52조8천억원)를 투자해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하고 장비반입식을 열었다. 한국의 경우 핵심 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20년간 텍사스주에 2천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하고, 에스케이(SK)는 220억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 밖에도 한국의 에스케이온, 엘지(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 독일의 폴크스바겐, 일본 혼다·도요타 등 전세계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미국 ‘보조금’ 조건에 맞춰 전기차나 배터리 공장 짓기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과 대만, 유럽국가들에선 첨단 생산시설과 양질의 일자리가 빠져나가는 셈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경제 안보’ 강화를 내걸고 동맹과 협력하는 ‘프렌드 쇼어링’이라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동맹국들까지 제로섬 게임으로 몰아넣으면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문제제기에도 “해법을 찾자”는 말만 반복할 뿐 구체적 안을 내놓지 않는 상황은 매우 유감이다. 한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세액공제 조항 적용을 한국 업체에 3년 유예할 것을 미국에 요청한 상태지만, 미국은 법 개정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은 더 비판적이다. 지난주 미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의 정책이 “많은 유럽 일자리를 죽일 것”이고 “서구를 분열시키는 선택”이라며 반발했다. 유럽연합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나 보복관세 부과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미국의 보호주의’에 대한 비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동맹의 우려를 무시하고 미국 일방주의만 고집한다면, 동맹과의 갈등과 틈은 점점 커질 것이다. 한국은 유럽연합이나 일본 등 같은 고민을 하는 국가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필요한 부분을 공조하면서 더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