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6차 고위당정협의회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기 비서실장, 한덕수 총리,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노동조합 재정운영의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을 정부가 과단성 있게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지난 18일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참석한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노조 활동에 햇빛을 제대로 비춰야 한다”며 이를 강조했다고 한다. 뚜렷한 근거 제시도 없이 노조의 재정이 음습하게 운영돼 큰 문제인 것처럼 왜곡·과장하며 회계자료 공개를 압박하는 의도가 ‘노조 때리기’ 나아가 ‘노조 길들이기’ 차원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노조의 재정은 현재도 공개 원칙에 따라 운용되고 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노조 대표자는 연 2회 회계감사원에게 감사를 받은 뒤 결과를 조합원에게 공개하고, 회계연도마다 결산 결과와 운용 상황을 조합원에게 공표해야 한다. 또 조합원의 요구가 있으면 열람을 허용하는 것은 물론, 노동부가 제출을 요구하면 응하게 돼 있다. 그런데도 “햇빛을 제대로 비춰야 한다”는 한 총리의 말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노조 재정은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에 대한 공개가 원칙이고, 현행법도 그 틀 안에 있다. 국민에게 회계자료 전반을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한 총리의 주장은 근거를 찾기 어렵다.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예산을 운용하는 노조가 자체 예산을 행정관청에 보고하거나 외부의 회계감사를 받도록 한 외국 사례를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설사 그럴 필요가 있다 해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을 선언하는 게 아니라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등과 먼저 협의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게 순리다.
그날 회의에서 정진석 위원장도 “강성 귀족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이른바 ‘노동개혁’ 필요성을 돌아가며 언급했다고 한다. 그래서 갑자기 튀어나온 한 총리의 ‘투명 노조’ 발언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앞서 화물연대 파업 대응에서도 힘에 의한 굴복만을 추구하며 노조를 적대시하는 시각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노동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면 정치도 경제도 망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 총리의 발언 역시 이른바 ‘강성 노조’의 힘을 빼겠다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돈줄’에 해당하는 재정을 들여다보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일방적 강요는 반발을 부를 뿐이라는 사실을 정부가 깨달을 때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