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서울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수석비서관과의 티타임에 윤 대통령이 분양받은 은퇴견 새롬이가 함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조합의 재정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26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노조 부패’가 우리 사회 ‘3대 부패’라는 말까지 쓰며 ‘노조 때리기’에 나섰고 그 전날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노조 회계감사원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장관의 이날 발표는 그 연장선에서 노조에 부정적인 인식을 덧씌우려는 정부의 의도를 행동으로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브리핑에서 “노조 재정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공개되는지에 대한 국민 불신은 커지고 있으며, 깜깜이 회계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내는 조합비로 운영되는 자치적 결사체다. 조합 재정을 어디에 쓸 것인지, 제대로 썼는지 판단·평가하는 것은 조합원들의 몫이다. 노동조합법은 이미 노조로 하여금 사무실에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비치하고 3년간 보존하도록 하고 있다. 이 장관은 노조가 이 규정을 잘 지키도록 정부가 자율점검을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어디까지나 조합원들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 행정기관이 제출을 요구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면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장관은 노조 회계감사원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회계감사원의 자격을 공인회계사 등 법적 자격 보유자로 한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조 회계감사를 외부감사를 의무적으로 받는 기업과 같은 수준으로 하자는 발상이다. 그런데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은 비상장사의 경우 매출액 100억원 이상, 자산 120억원, 부채 70억원 등 요건 가운데 2개 이상을 충족해야 외부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조합비로 운영하는, 중소기업 매출보다 자금 규모가 작은 노조의 회계감사에 그런 의무를 부과하면 우스꽝스러운 일이 된다. 재정 규모가 매우 큰 노조에서도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두는 게 낫다.
윤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인 ‘다트’(DART)처럼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장관의 말에 한술 더 뜬 것인데, 주식 투자자들이 노조 회계를 보고 투자 판단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지시다. 대통령의 노조 관련 발언이 정상 궤도를 한참 벗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