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택배노동조합 대표들과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시민단체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정문 앞에서 씨제이(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판결에 환영하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회사가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다면 사용자로서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원청 회사에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한 첫 판결이다. 간접고용이 확산되면서 하청·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헌법상 노동 3권이 침해당해온 현실을 바로잡아야 할 당위성이 다시금 확인됐다.
서울행정법원은 12일 씨제이(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했다가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은 뒤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원은 “원사업주(하청)에 비해 거래상 우월한 지위의 다른 사업주(원청)가 원사업주 소속 근로자의 노무를 자신의 지배나 영향 아래 이용하는 계층적, 다면적 노무 제공 관계가 확산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배력이나 결정권이 없는 원사업주에게만 단체교섭의 의무를 부담시키면 근로자의 근로3권이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법원은 원청도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그 범위를 제한적으로만 인정해왔다. 2010년 대법원은 원청이 하청노조의 결성·활동을 방해하는 경우 사용자로서 부당노동행위를 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사용자로서 단체교섭에 응할 적극적 의무까지 인정되지는 않았다. 이번 판결은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의 의무 범위를 더욱 확장한 의미가 있다.
이는 국제 기준에 비춰 보면 오히려 많이 늦었다. 우리나라가 2021년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29호·87호·98호)은 지난해 4월부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됐다. 국제노동기구는 이들 협약에 근거해 ‘고용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자와 노조의 단체교섭은 항상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중앙노동위가 대한통운에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내린 것은 이에 부합하며, 법원의 이번 판결도 당연한 결과다.
이제 하청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두고 쟁의와 소송을 반복하는 소모적 방식은 그만둘 때가 됐다. 법 개정을 통한 명료한 해법이 필요하다. 국회에 제출된 ‘노란봉투법’은 노조법의 사용자 조항을 “근로자의 노동조건, 수행업무 또는 노동조합 활동 등에 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자”로 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제노동기구 및 이번 판결의 취지와 일치한다. 노란봉투법 처리를 더 이상 늦출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