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다세대주택 담벼락에 달린 가스계량기 앞으로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난방비 폭탄’ 고지서로 국민들의 아우성이 높아지자, 정부가 에너지 비용 부담 경감 대책을 얼마 전 부랴부랴 내놨다. 161만가구를 대상으로 도시가스 요금을 할인해주고, 117만6천가구에 대한 ‘에너지 바우처’ 지급을 한시적으로 2배 늘리는 내용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에너지 관련 요금 인상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어느 때보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긴요한데, ‘이전 정부 탓’과 원론적인 얘기만 들린다. ‘에너지 빈곤층’을 정확히 파악할 조사는 내년에나 시작할 수 있다니 걱정이 앞선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기존 지원 대상을 그대로 두고 지원 규모만 늘린 것이다. 요금 고지서를 쌓아둔 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의 소식이 잊을 만하면 들리는 건, 지원의 사각지대가 엄연히 존재하고 그것이 빈곤층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방증이다. 29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최근 4년 동안 한겨울이 포함된 1분기에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연료비 부담은 가처분소득의 12.9%에 이른다. 에너지 요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사각지대도 넓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대책을 서둘러 내놓지 않으면, 에너지 빈곤층이 겪는 고통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해질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여당이나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은 지원 대상이 대부분 겹치는 도시가스 요금 할인 대상과 에너지 바우처 지급 대상을 단순 합산해 “277만가구 난방비 지원”이라고 부풀려 홍보했다.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29일 방송에 나와 “에너지 가격은 경제 활동의 시그널인데 제때 시그널을 못 준 게 큰 패착 아닌가 생각한다”며 전 정부를 겨냥하는가 하면 “원전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해 귀를 의심케 했다.
에너지 수급 위기가 하루아침에 끝날 수 없다면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실태조사를 거쳐 지원 대상을 체계적으로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 국회는 지난해 9월 에너지 이용 소외계층에 대한 실태조사를 규정한 에너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관련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내년에나 조사에 착수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급한 대로 기존의 사회복지 전달체계를 통해 지원 대상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또한 추경 편성과 횡재세를 비롯해 재정 투입을 늘릴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놓고 정부와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