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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베트남 민간인 학살’ 인정 판결, 정부도 전향적 태도를

등록 2023-02-07 18:12수정 2023-02-08 02:38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따른 피해를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변호인들이 소송 당사자인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63)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응우옌)에게 3천만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따른 피해를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변호인들이 소송 당사자인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63)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응우옌)에게 3천만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베트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 7일 나왔다. 우리 군이 참전한 전쟁에서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는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는 것은 인정하기 고통스럽고 국제사회와 역사에 부끄러운 일이다. 사법부가 그 실체적 진실을 확인한 것은 용기 있는 역사적 고백이자 인권국가로서 커다란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1968년 2월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이 70여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으로 가족을 잃고 자신도 중상을 당했다며 당시 8살이던 베트남인 응우옌티탄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과 현지 민병대원 등의 증언을 비롯한 여러 증거를 심사해 응우옌티탄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고 “이 같은 행위는 명백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는 2000년대 초 <한겨레21> 보도로 본격 제기된 뒤 구체적 사실들이 드러나고 시민사회에서 사실 인정과 배상 요구가 이어졌으나 정부는 전면 부인해왔다. 2020년 응우옌티탄이 소송을 낸 뒤에도 증거가 없다거나 당시의 게릴라전 특성상 정당 행위였다는 등의 이유로 책임을 부정했다. 사법부 판결을 통해서나마 국가의 이름으로 사실 관계와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법원은 손해배상 시효가 만료됐다는 정부 쪽 주장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할 무렵까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며 “시효 완성 주장은 권리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징병·징용 등 반인도 범죄 피해를 당했던 비극적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이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면서 우리가 가해자인 사안에 대해선 침묵한다면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베트남·한국·미국 간 약정서 등에 따라 베트남인이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정부 쪽 주장에 대해 “개인인 원고의 청구권을 막는 법적 효력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합의로 ‘위안부’와 강제 징용 문제 등이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데 대한 정확한 반론인 셈이다.

베트남은 지난해 우리나라가 최대 무역 흑자를 낸 교역국이고 이주노동·결혼 등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은 지 오래다. 과거 총부리를 겨눴던 아픈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우호·협력의 지평을 넓혀야 하는 나라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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