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첫번째 TV토론에 앞서 천하람· 김기현·안철수·황교안 후보(왼쪽부터)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권 여당 지도부를 새로 뽑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경선이 갈수록 혼탁해지는 양상이다. 제주 4·3사건이 김일성의 지시로 일어났다는 황당한 색깔론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경쟁 후보를 뚜렷한 근거 제시도 없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비방전이 가열되고 있다. 마치 ‘저질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한 모습을 지켜보며 실망하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최고위원 후보인 태영호 의원은 지난 12일 제주를 방문해 “4·3사건은 명백히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말했다. 다음날 합동연설회에서는 “제가 북한에서 와서 잘 안다.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사건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웠다”며 같은 취지의 말을 반복했다. 오랜 진상조사와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가 합의한 ‘해방정국의 극한적 이념 대립으로 무고한 민간인 수만명이 희생된 참극’이라는 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주장이다.
득표가 아무리 급해도 극단적 색깔론은 처음부터 자제했어야 마땅하다. 또 자신의 발언이 큰 논란으로 번지면 사과하고 바로잡는 것이 상식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태 의원은 이어진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도 같은 언급을 계속했고,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자 “민주당이 내가 무서워서 그런다”는 망발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을 ‘북한에서 온 자유투사’로 부각하려는 표 계산만 있을 뿐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제주도민과 유가족의 아픔과 슬픔에는 일말의 공감도 보이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당권 도전에 나선 김기현·안철수 후보는 진흙탕에 누가 더 깊숙이 발을 담글 수 있는지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하다. 안 후보는 전날에 이어 17일에도 김 후보의 ‘울산 케이티엑스(KTX) 역세권 시세차익 의혹’을 들추며 공격에 나섰고, 김 후보는 안 후보에 대한 엄중 조처를 당 선거관리위원회에 요구했다. 김 후보 쪽도 ‘철새’ ‘민주당 디엔에이(DNA)’ 등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해 안 후보를 연일 비난하고 있다. 보다 못한 당 선관위는 이날 유흥수 위원장 명의로 “근거 없는 비방과 무분별한 의혹 제기 즉각 중단”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면서도 태 의원에 대해서는 징계는커녕 단순 주의 조처에 그치고 말았다.
여당 경선에서 비전이나 정책 경쟁이 사라진 지는 오래됐다. 오로지 ‘윤심 줄세우기’만 횡행한 예비경선이 끝나면 좀 나아질까 기대했으나 본경선에선 저열한 진흙탕 싸움으로 옮겨갔다. 이런 경선에서 누가 이기든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