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안보정책관이 6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한-일 수출규제 현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6일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으로 국내 재단을 통한 배상급 지급안을 발표하면서,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 수출규제에 대응해 우리 정부가 제기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절차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하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취한 이 조처는, 우리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완전히 굴복한 모양새를 고스란히 연출했다. 수출규제에 맞선 기업들의 국산화 투자 등 대응에도 적잖은 혼선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 우리나라에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 수출을 규제하고, 다음달 우리나라를 수출심사 우대국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뺐다. 일본은 지금도 우리나라의 무역관리 심사 체계가 불충분했기 때문이고,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태도를 고수한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7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가 분쟁해결 절차를 중단한다는 의사를 보여 “정책 대화를 재개할 환경이 조성됐다”면서도, “(정책 대화를 통해) 한국 쪽의 심사 체계와 수출 관리의 실효성을 확실히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외교적 갈등 해결 수단으로 다시는 경제보복 조처를 취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일본 쪽으로부터 받아내기는커녕, 거꾸로 우리 무역 관리 체계를 심사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음을 뜻한다. 굴욕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는 하루빨리 없애야 했다. 하지만 일본 쪽에 통사정을 해야 할 만큼 절박한 처지였는지 의문이다. 강감찬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안보정책관은 “일본 수출규제에도 소재, 부품, 장비 등 100대 품목의 대일의존도가 낮아졌고 국내 생산 차질이 빚어지지 않았다”고 6일 설명했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해제한다고 우리가 어떤 이득을 얻을지 뚜렷하지 않고, 따라서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자립화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과 별개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심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리 있는 얘기다. 그러나 대체 조달처 확보와 달리 국산화는 최선의 대안이 못 될 때도 많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추진한 국산화 투자 가운데, 상황 변화로 일본 기업 제품 대비 경쟁력을 다시 계산해봐야 하는 사례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 기업들이 겪을 혼란을, 전 정부 시절 시작된 일이라고 나 몰라라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