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미 정상회담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 중요 외교 일정을 앞두고 ‘외교사령탑’인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9일 결국 물러났다. 이달 들어 보름 사이에 의전비서관과 외교비서관이 잇달아 교체된 데 이어 김 실장까지 교체된 것은 외교안보라인의 총체적 혼란과 무책임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이 처한 엄혹한 외교안보 환경을 고려하면, 갑작스러운 국가안보실장 교체는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팀의 불안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날 김 실장 교체설이 나오자 대통령실은 “사실무근”이라며 공식 부인하기도 했는데 하루 만에 뒤집어 정부의 신뢰마저 스스로 떨어뜨렸다.
김 실장은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의 4월 말 미국 방문 일정과 의제를 조율한 외교안보 실무 책임자다. 이날 물러나면서 “국빈방문 절차가 잘 진행되고 있어 후임자가 오더라도 차질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했는데 무책임한 말이다.
김 실장에 앞서 한-일 정상회담 직전 김일범 의전비서관이 자진사퇴했고, 이문희 외교비서관도 잇따라 교체됐다.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미국 국빈방문(4월26일), 주요 7개국 정상회의와 한·미·일 정상회담(5월11~13일) 등 한국 외교가 중대 기로에 서 있는 때다. 한국의 전략을 가다듬는 데 온 힘을 다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책임자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더욱이 소문만 무성할 뿐 분명한 사퇴 이유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김 실장 사퇴 배경으로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일정 조율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이 꼽힌다. 그룹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의 합동공연 사항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것을 윤 대통령이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김성한 실장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알력설, 대통령실과 외교부의 갈등설이 끊이지 않는 등 외교안보팀의 난맥상은 끊이지 않았다.
강대국들의 자국 보호주의와 공급망 혼란으로 수출 주도 국가인 한국 경제에 심각한 위기 신호가 울리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는 기업들이 보조금을 신청할 때 민감한 핵심 영업 기밀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전술핵탄두의 실물 사진까지 공개하는 등 전술핵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은 한국의 미래가 달린 반도체와 배터리 문제, 북핵 위기에 대한 해법을 만들어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의전과 보고에 앞서 이런 점들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불안감이 더욱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외교안보라인 혼란에 대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최대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