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지난 3월29일 오후 서울 도봉구 북부지방법원 앞에서 언론비상시국회의 등 언론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구속영장 기각을 촉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대통령실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면직을 검토 중인 것으로 4일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티브이(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점수를 고의로 낮추는 데 관여한 혐의로 검찰이 한 위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임기가 채 석달도 안 남은 한 위원장을 기어이 끌어내리려는 이유는, ‘방통위 개편을 통한 공영방송 장악’ 의도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15년 전, 언론 장악 흑역사를 남긴 이명박 정권의 전철을 답습하는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한 위원장은 중대한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위원장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결격 사유가 있다”며 인사혁신처에서 한 위원장 면직 처리에 필요한 법률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한 위원장이 티브이조선 심사 당시 방통위 간부들한테서 평가점수 누설 및 점수 조작 사실을 수차례 보고받고도 묵인했다며, 지난 2일 그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한 위원장은 검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재판에서 무고함을 입증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앞서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한 위원장 구속영장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기각했다. 주요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불충분한데도 검찰이 기소하자마자 대통령실이 면직 절차에 나선 것이다. 애초 방통위에 대한 감사원의 대대적인 감사와 검찰 수사가 한 위원장의 사퇴 거부에서 비롯됐다는 걸 생각하면 예고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이처럼 한 위원장을 한시라도 빨리 내쫓으려고 조바심을 내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내년 4월 총선 전 방송 장악 완료’라는 시간표에 맞춰야 하니 한 위원장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을 것이다. 방송을 장악하려면 방송사 경영진을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 첫 관문이 방통위원장 교체다. 방통위는 <한국방송>(KBS)은 물론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이사를 추천하거나 임명할 권한을 갖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방송 장악 시계’는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한국방송에 대한 장기간 감사에 이은 방문진 감사 착수, <와이티엔>(YTN)의 공기업 지분 매각(민영화) 추진, 한국방송 수신료 분리징수 압박 등이 그 예다. ‘엠비(MB)식 언론 장악’은 대규모 기자 해직 및 징계 등 큰 상처를 남겼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