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섬나라 18개국이 모인 ‘태평양 도서국 포럼’과 이들에 자문하는 독립 연구진이 올해 2월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해 시찰하고 있다. 도쿄전력 누리집 갈무리
한-일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정부가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 관련 상황을 살펴볼 전문가 시찰단을 오는 23~24일 파견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 전문가들의 ‘시찰’이 오염수 방류를 강행하려는 일본 정부의 명분 쌓기에 들러리로 이용되고,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 재개 압력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차원이 아닌 개별 국가 등에 시찰을 허용한 것은 대만과 태평양 섬나라 18개국이 모인 ‘태평양도서국포럼’(PIF)에 이어 한국이 세번째다. 문제는 대만과 태평양 국가 시찰단이 지난해와 올해 후쿠시마 현장을 방문했을 때, 담당자의 설명을 듣고, 오염수 탱크, 다핵종제거설비(ALPS), 해저터널 등을 살펴보는 일정이 전부였다는 점이다. 일본 쪽에서 보여주고 싶은 장소와 자료를 볼 수 있을 뿐 별도의 자체 검증은 불가능했다. 이번에 개별 시찰까지 진행한 한국 정부가 안전성에 대해 구체적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면, 고농도 방사성 물질이 섞인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로 정화 처리한 뒤 올여름 후쿠시마 앞바다에 방류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계획에 ‘정당성’만 더해주는 셈이 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의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올해 여름 바다 방류가 시작되면 지금까지 지켜온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 금지의 원칙도 흔들리게 된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가 안전하지 않다는 이미지가 계속되는 것은 각국의 농수산물 수입 금지 영향이 크다고 보고, 집요할 정도로 해제를 요구해왔다. 그 결과 애초 규제를 했던 55개 나라·지역 가운데 현재까지 수입을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중국 등 5곳뿐이다. 한국은 이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일본에 승소했는데, 오염수 방류에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해 수입 금지 명분도 잃게 될 엄중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만 외치며 일본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해온 윤석열 정부를 바라보는 여론의 근심은 커져간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 바다와 수산업의 미래가 달린 문제마저 일본에 일방적으로 ‘퍼주기’ 하는 상황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정부는 우선 검증단을 제대로 꾸리고, 안전성을 확인하기 전에는 오염수 방류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일본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독자적 검증 끝에 오염수 방류 연기를 일본 정부에 공식 요구한 태평양 18개국 등 국제사회와의 연대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