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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코로나 격리 의무 사라져도 ‘아프면 쉴 권리’ 있어야

등록 2023-05-10 18:13수정 2023-05-11 18:11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시작된 2022년 7월4일 서울 종로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에 관련 배너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시작된 2022년 7월4일 서울 종로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에 관련 배너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11일 코로나19 위기경보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한다. 코로나 확진자에 대한 격리 의무를 권고로 바꾸는 방안도 애초 예정보다 앞당겨, 이르면 이달 말께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런 조처는 나라 안팎의 유행 상황 등을 고려해, 엔데믹(감염병의 주기적 유행) 국면으로 전환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다만 우려되는 문제는 ‘아프면 쉴 권리’가 여전히 제도화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코로나에 확진되더라도 쉬지 못한 채 일터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기업 규모 등 여건에 따라 감염병 진단과 치료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2020년 3월, 정은경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은 “‘아파도 나온다’는 문화가 ‘아프면 쉰다’로 바뀔 수 있도록 근무 여건을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신종 감염병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긴박한 상황에서 나온 이 발언은 우리 사회에 울림을 주면서 인식과 행동의 전환점이 됐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지만, ‘아파서 쉰 일수’(연간 2일·2018년 기준)는 최저 수준이다.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를 보면, 아픈 노동자의 약 30%는 제때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했는데, 이유는 ‘직장 분위기’(43%)와 ‘소득감소 부담’(18%) 등이었다. 대기업 복지 차원에서 제한적으로만 운영되고 있는 유급병가나 오이시디 회원국 대부분이 도입한 상병수당(업무 외 질병·부상에 따른 치료기간의 소득보전) 등이 제도화돼 있지 않은 영향이 크다.

방역 조처가 완화되면, 정부가 지원해온 코로나 확진자에 대한 생활지원비나 중소기업에 대한 유급휴가 지원비 등은 당분간만 유지된 뒤 중단된다. 추가 전파와 증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격리는 계속 필요한데, 아프면 쉬기 어려운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책은 사라지는 것이다. 상병수당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된 지 3년이 흘렀지만, 정부는 아직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25년 7월 이후 전면 도입이 목표지만, 적용 대상과 급여 수준 및 보장 기간, 재원 마련 방안 등 제도 설계를 위한 논의는 시작조차 않고 있다. 나라별로 상병수당 운영 방식은 사회적 합의 수준에 따라 다양하다. 대부분 사회보험 급여 형태로 보장하며, 일부는 저소득층에 대한 조세 지원 방식을 선택한다. 마냥 미뤄둘 일이 아닌 만큼, 정부는 이 기회에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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