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근 경찰청장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찰청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집회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윤 청장은 무리한 수사를 중단하라는 노동계 요구에 대한 언급 대신, 건설노조 집회에 불법성이 있는지 단호하게 수사하겠다는 의지만 피력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이른바 ‘건폭몰이’ 수사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느라, 노사관계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고 수사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8일 ‘건설노조 탄압 대응 100인 변호인단’은 검찰과 경찰의 건설노조 수사 과정과 영장청구서 등을 살펴본 결과, 단체협약상 권리가 하루아침에 강요죄·공갈죄로 둔갑하는 등 비정상적인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수사기관이 노동조합, 단체협약, 노조의 운영방법, 노동조합법 등에 대해 무지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며 “소환된 조합원들이 건설노조의 정당한 노조활동이라고 항변해도 구체적 조사를 하지 않고 조폭과 동일시했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현재 수사기관은 조합원을 고용해달라는 단체협약 체결 요구를 ‘강요죄’로 보고 있다. 건설노조는 여러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고용과 실업을 반복하는 노동자들이 모인 산업별노조인데, 수사기관은 일반 기업의 상용직 고용만을 전제로 놓고 자의적으로 ‘불법 딱지’를 붙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정부가 헌법과 노동관계법이 보장하는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나 단체협약 체결 권리 등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서로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두고 협상해온 노사관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탓이다. 사안에 따라 노사 간에 어느 정도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행위인데, 수사기관이 마구잡이로 위법 딱지를 붙인다는 것이 변호인들의 해석이다. 앞서 정부는 여러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전세사기보다 ‘건설노조 옥죄기’ 수사에 더 몰두해온 정황이 드러나면서 비난을 샀다.
정부는 공공기관 등의 단체협약을 무력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7일 공공부문 단체협약과 노조 규약 실태를 확인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불합리한 단체협약에 대해 개선하도록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인사·경영권 침해라고 지적된 사례 가운데는, 노조 간부에 대한 인사이동 금지와 같은 내용도 포함됐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불법·부당하게 전보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사용자와의 협상을 통해 확보된 조항인데 이를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것은 공공부문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내몰겠다는 것인가. 200여년 전 유럽에서 처음으로 노조가 등장했을 때 국가는 단체교섭 요구를 위력으로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보고, 협박·공갈죄로 처벌했다고 한다. 정부가 노동기본권의 시계를 중세 봉건사회로 되돌리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