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지난 3월29일 오후 서울 도봉구 북부지방법원 앞에서 언론비상시국회의 등 언론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구속영장 기각을 촉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면직안을 재가했다. 대통령실은 “중대범죄를 저질러 형사소추되는 등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을 면직 사유로 들었다. 검찰 수사가 처음부터 한 위원장 ‘축출’을 겨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면직 결정은 예고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이처럼 집요하게 한 위원장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이유는 ‘방송 장악’ 음모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15년 전, 언론계에 큰 상처를 남긴 ‘엠비(MB, 이명박)식 언론 장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뻔히 알면서도 이를 반복하려는 건지 심히 우려스럽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한 위원장 사퇴를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지난해 6월, 대표적인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인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한 위원장을 지목하며 “대통령이 바뀌었으면 국정과제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은 물러나는 게 맞다”고 한 게 단적인 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방송도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 발맞추라는 뜻이다. 방통위는 다른 정부 부처와 달리 법률에 의해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 방송·통신이 정권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데, 권 당시 원내대표의 발언은 방통위의 독립적 위상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다.
여당 실세가 운을 떼자 감사원과 검찰이 대대적인 감사와 수사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방송 장악 시나리오’를 밀어붙이는 데 감사원과 검찰이 ‘돌격대’를 자임했던 것과 판박이다. 윤석열 정부가 사정기관까지 동원해 한 위원장을 쫓아내려 기를 쓰는 것은 방통위원장 교체가 방송 장악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한국방송>(KBS) 이사 추천권과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명권을 지닌 기구다. 방송사 경영진을 정권 입맛에 맞는 이들로 바꾸려면 방통위 재편이 선결 과제다. 총선 전에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탈바꿈시키려는 의도가 아니고서는 임기를 두달 남겨둔 방통위원장 면직에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
현 정부 들어 방송을 길들이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한국방송과 방문진에 대한 감사, <와이티엔>(YTN) 민영화 추진, 한국방송 수신료 분리징수 검토 등 방식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공영방송 라디오 출연진 편향성까지 문제 삼는다. 대통령이 틈만 나면 ‘자유’를 부르짖는데, 언론 자유가 곳곳에서 위협받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