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서울 시내에 설치되어 있는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연합뉴스
전셋값이 떨어져 기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는 집주인을 대상으로 정부가 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이사를 떠나는 세입자로선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임대인에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완화해서까지 대출 한도를 늘려주는 것은 선을 넘는 일이다. 필요하다면 세입자를 지원하면 된다. 무리한 갭투자를 한 투기꾼까지 지원하자고 가계부채 관리에 구멍을 내서는 안 된다.
전셋값이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보다 낮아지는 ‘역전세난’은 계속 심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6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전국의 잔존 전세계약 중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이 1월 25.9%에서 4월 52.4%로 늘었고, 같은 기간 깡통전세 위험가구 비중도 2.8%에서 8.3%로 증가했다.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여 초저금리 정책을 폈던 시기에 급등한 집값과 전셋값이 뒷걸음질을 하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전세사기’가 많았던 빌라나 다가구주택에서 역전세난이 더 심하다.
그렇지만 집값이나 전셋값은 오르내리는 것이고, 그 리스크는 집주인이 져야 할 몫이다. 집주인은 계약 만료로 이사하는 세입자의 보증금을 제때 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지 못하면 손해도 배상해야 한다. 집주인은 이미 여러 상품이 나와 있는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을 활용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활용해도 반환할 보증금을 다 마련하지 못하는 집주인을 위해 대출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그렇다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풀어서까지 대출 한도를 늘려주는 것은 옳지 않다. 부풀어 오른 전세보증금을 지렛대 삼아 무리한 갭투자를 한 사람까지 사후 지원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세입자를 돕는 게 목적이라면,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세입자에게 직접 유동성을 지원하면 될 일이다.
올해 1분기 들어 가계부채가 13조7천억원 감소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여전히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뛰어넘고, 부채비율은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다. 정부가 고금리에 따른 가계 고통 경감을 명분으로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를 공급하고 있어 2분기에는 가계대출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만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서 억제의 끈을 더 놓았다가는 나라 경제를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