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정부가 26일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초고난도 문항, 이른바 ‘킬러 문항’ 사례 22개를 공개했다.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이 공개되면서 수험생·학부모들의 혼란과 불안이 계속돼왔는데, 열흘이 지나서야 ‘킬러 문항’이 어떤 것인지 답변을 내놓은 셈이다. 더구나 이런 유형의 문제를 배제한다고만 했을 뿐 새로운 수능 출제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아 교육 현장의 혼란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밖의 사교육 경감 대책도 근본적 문제를 비켜 간 채 겉핥기에 그쳐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정부는 ‘킬러 문항’을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으로 정의하고 사례를 제시했지만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는 “공교육 과정 밖에서 다루는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통상 정답률이 10% 이내로 낮은 문제를 ‘킬러 문항’으로 불러왔는데, 이날 사례로 제시된 문항들 가운데는 정답률이 20~30%대인 경우도 여럿이다. 정부가 배제하겠다는 ‘킬러 문항’의 개념 자체가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다.
수능에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등급제에 기반한 대입제도의 근본적 개선 없이는 어떻게든 수능의 변별력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는 데서 수험생·학부모들의 현실적 우려가 나온다. 변별력 확보를 위해 새로운 경향의 문제를 출제할 텐데, 수능을 다섯달 앞둔 시점에서 그 구체적 방향 제시가 없으니 혼란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불안 속에 초고난도 문항을 대체할 문제 유형들이 또 다른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다.
나머지 사교육 경감 대책들도 획기적이라 할 만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고교·대학 서열체제와 이에 따른 줄세우기식 입시라는 근본 문제에는 전혀 다가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치원·초등학교 단계의 돌봄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예술·체육 맞춤형 방과후 프로그램 확대 등을 제시했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특목고나 의대 진학을 위한 선행학습이 이뤄지는 현실에는 전혀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부는 지난주 특목고 존치를 발표하며 사교육 수요를 되레 늘려놓지 않았나.
이번 대책 발표는 대통령 발언을 수습하느라 급조된 인상이 짙다. 이제라도 정부는 전문가들과 함께 명확한 출제 방향을 마련해 올해 수능의 불확실성부터 해소해야 한다. 나아가 어려운 수능과 사교육의 근본 원인인 줄세우기식 입시 제도의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 발언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