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사이버 보안 관리 관련 국가정보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의 보도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하루 전인 지난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보안점검 결과를 합동 점검 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협의 없이 독단으로 발표한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은 17일 “국정원은 보궐선거를 하루 앞두고 ‘해킹으로 투표 분류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며 “그러나 인터넷진흥원이나 선관위는 발표 내용에 동의하기는커녕 사전 협의도 없었다는 것이 국감에서 확인됐다”고 밝혔다. 실제 인터넷진흥원은 지난 15일 박찬대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서면 답변을 통해 “국정원의 보안점검 결과 보도자료 배포 관련 협의는 없었다”고 확인했다.
당시 국정원은 하필 보궐선거 하루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선관위 투·개표 시스템이 해킹에 취약해 사전투표 조작 등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를 두고 국민의힘에선 “위험성이 드러난 사전투표 시스템을 없애야 한다”거나 “선거 결과 조작을 위한 음모의 수단” 등의 주장이 나왔다. 통상 사전투표는 젊은 세대 등 야권 지지층 참여도가 높다. 국정원 발표 사흘 전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사전투표율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국정원 발표와 여당 주장을 두고 사전투표에 대한 보수층의 불신과 우려를 부추기고 여권 지지층의 본투표 참여를 높이려는 정략적 의도가 깔린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었다.
특히 선관위가 국정원 발표 직후 곧바로 반박 입장을 밝히면서, 국정원과 여당의 ‘짬짜미’ 의혹에 불을 붙였다. 선관위는 당시 “국정원 보안점검은 기존 보안 시스템을 작동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가상 해킹’이었다”며 “투·개표 조작은 사실상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반박했다. 이어 “단순히 기술적인 해킹 가능성만을 부각해 선거 결과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선거 불복을 조장하고, 선출된 권력의 민주적 정당성까지 훼손할 위험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번에 인터넷진흥원마저 국정원의 독단적 발표였음을 인정해, 의혹은 더욱 커지게 됐다.
국정원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국내 정치와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가 ‘촛불’ 이후 대거 단죄받은 바 있다. 당시 검찰 수사를 이끈 이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런 만큼, 윤 대통령은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이 되살아나는 현실에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국회는 국감 등을 통해 책임을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 소지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