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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민주당, ‘병립형’ 퇴행은 대국민 약속 위반이다

등록 2023-11-29 18:40수정 2023-11-30 02:40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29일 국회 당 대표실을 찾은 정의당 김준우 비대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29일 국회 당 대표실을 찾은 정의당 김준우 비대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8일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제와 관련해 ‘병립형’ 회귀 가능성을 내비쳤다. 2016년 총선까지 적용된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단순 득표율로만 의석수를 나눠 갖는 탓에 여야 두 거대 정당에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그 때문에 ‘선거 민심의 왜곡’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게 됐고, 2020년 총선을 앞두고 폐기된 바 있다. 그런데 이 대표가 그 병립형으로 퇴행할 가능성을 언급했다니 매우 부적절하다.

이 대표의 발언은 즉석 유튜브 방송에서 지지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나왔다. 한 지지자가 “(민주당이) 이기는 선거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거제 협상을) 해주세요”라고 하자, 이 대표는 “현실(총선 승패)의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이라며 “이상적인 주장으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반문했다. 총선 승리를 위해선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역주행도 불사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이 대표는 29일 “병립형 퇴행만은 막는 결단을 해달라”는 정의당의 요청에도 대답을 얼버무렸다. 국민의힘과 손잡고 결국 병립형 회귀에 합의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식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 대표가 유튜브에 출연한 날, 민주당에선 의원 75명이 ‘위성정당 방지법’을 공동 발의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도입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고쳐 쓰자는 취지다. 준연동형은 애초에 소수 정당의 국회 진입을 돕는다는 ‘명분’이 분명했다. 하지만 두 거대 정당이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경쟁적으로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결국 제도 자체가 정당성을 잃고 말았다. 내년 총선을 현행 제도 그대로 치를 수는 없게 됐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위성정당 없는 준연동형’을 여러 차례 국민 앞에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앞뒤 설명도 없이 현실론을 앞세워 파기 가능성을 공개 거론한 것은 경솔한 처사다. 그렇지 않아도 이 대표는 이미 지난 9월 자신의 체포동의안 처리와 관련해 ‘불체포 특권 포기’ 대선 공약을 스스로 깨뜨린 바 있다. 이런 일이 되풀이돼서는 이 대표는 물론 민주당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눈앞만 보지 말고, 국민을 믿고, 더 멀리 내다봐야 한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기간에 총선 당시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쁜 승리보다는 당당한 패배를 선택하자. 그래야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그 길을 잠깐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길을 또 잃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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