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킬러문항 배제’ 지시 이후 혼선을 거듭해온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역대급 ‘불수능’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능 난도가 높아질수록 사교육 유발 요인이 커지는데도 정부는 ‘변별력을 확보했다’고 자화자찬만 쏟아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가 7일 발표한 수능 채점 결과를 보면,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이 150점으로 한해 전보다 16점이나 높아졌다. 표준점수는 난이도를 반영한 가중치 점수로 출제 문제가 어려울수록 최고점이 올라간다. 수학 최고점도 148점으로 전년보다 3점 높았다. 절대평가 과목인 영어마저 1등급 비율이 4.71%에 그쳤다. 그동안 교육부는 영어 1등급 비율이 10% 정도는 돼야 한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이번 수능은 상대평가(1등급 4%)와 비슷한 비율이 나올 정도로 시험이 어려웠던 것이다. 수능 만점자도 재학생은 전무하고 재수생 1명만 나왔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킬러문항 배제하고도 상위권 변별력 높았다’는 제목의 보도 참고자료를 배포하며 긍정적 측면만 부각시켰다. 교육부가 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하는 날, 이러한 참고자료를 배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킬러문항을 풀기 위해 사교육을 통해 공부해야 했는데 앞으로는 학업 본연에 집중하면 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킬러문항이 완전히 배제됐는지를 둘러싼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킬러문항만 없애면 사교육이 경감될 것이라는 상황 인식 자체가 매우 안이하다. 수능을 불과 다섯달 남겨둔 상황에서 대통령 지시가 내려온데다 킬러문항 없이도 변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만 골몰하다 보니, 국영수가 모두 ‘역대급’으로 어렵게 출제되는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 9등급 상대평가 시험인데 난도까지 높이면, 고난도 문제 유형에 대비하려는 수험생들은 사교육을 더 찾게 된다.
사교육 경감이라는 정부 목표가 달성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교육부 답변은 더 가관이다. 교육부는 언론 브리핑에서 “킬러문항 배제만으로도 어느 정도 공교육 신뢰 회복의 계기가 마련됐다”며 “학생 수준에 따라 사교육의 유혹이 있을 것으로 보지만 그것은 개인적 판단(의 문제)”이라고 밝혔다. 사교육으로 쏠림이 없도록 교육정책을 이끌어야 할 정부가 사교육 증가 요인을 관련 업계와 수험생, 학부모의 탓으로 돌린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남 말 하듯 이리 무책임해도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