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일본군 ‘위안부’ 역사 연구자들에게 통일부가 조총련 접촉 여부를 따져 묻고 경위서 제출을 요구하며 압박하고 있다. 개봉한 지 몇년 지난 작품들까지 ‘사상 검증’ 하듯 색출 작전을 벌이는 모양새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만 배제된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차별’을 만든 김지운 감독은 지난달 22일 통일부 남북관계관리단으로부터 ‘제작 과정에서 조총련, 조선학교 인사를 접촉했다는 언론 보도’를 근거로 접촉 경위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이미 4년 전 제작을 끝낸 다큐를 갑자기 통일부가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재일동포 차별 문제를 다룬 또 다른 영화인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를 만든 조은성 제작자도 개봉 2년이 넘은 지금 같은 요구를 받았다. 통일부는 2011년부터 조선학교를 지원해온 시민단체 몽당연필에도 접촉 경위서를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통일부는 남북교류 협력을 사실상 차단하고 통제 부서로 변신했다. 지난 8월에는 남북 대화·교류협력 조직 4곳을 통폐합해 ‘남북관계관리단’을 만들면서 남북교류 협력을 대폭 축소했다. 이젠 수년 전 문화예술·민간 교류 사례까지 들추며 문제 삼으니, 통일부가 아닌 과거 안기부나 국정원이 된 듯한 모양새다.
통일부의 이런 마주잡이 색출은 조선학교 안에도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지니고 있는 특수성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구체적인 대상도 특정하지 않아 자의적 권한 남용이란 지적도 나온다. 창작자의 표현 자유를 억압하고 ‘검열의 시대’로 회귀하는 데 통일부가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통일부는 이밖에 학술 관련 연구까지 막고 있다.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고 배봉기 할머니의 삶을 연구하며 당시 함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린 조총련 활동도 연구하려던 연구자들은 조총련 접촉 신청을 통일부에 냈으나 “현 남북관계 상황”를 이유로 모두 거부당했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하더라도, 통일부가 앞장서서 학술연구를 위한 민간 교류까지 차단하고, 창작자들과 시민단체의 과거 이력까지 파헤치며 ‘사상 검증’에 앞장서다니, 통일부는 통일을 앞당기는 부서인가, 막으려는 부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