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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크리스마스 사라진 베들레헴, 예수도 난민이었다

등록 2023-12-24 18:05수정 2023-12-25 02:44

23일(현지시각) 베들레헴 예수탄생 교회 앞의 올해 크리스마스 조형물이다. 건물 잔해와 철조망 사이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가자지구 주민과 연대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베들레헴/EPA 연합뉴스
23일(현지시각) 베들레헴 예수탄생 교회 앞의 올해 크리스마스 조형물이다. 건물 잔해와 철조망 사이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가자지구 주민과 연대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베들레헴/EPA 연합뉴스

베들레헴에 크리스마스가 사라졌다. 예수 탄생 성지이자 요르단강 서안에 위치한 베들레헴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와 예수 탄생을 축하했다. 광장의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대형 퍼레이드, 흥겨운 캐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거리의 산타 등 매년 축제가 벌어졌다. 그러나 올해는 이 모든 게 사라진 채 음울하고 쓸쓸하다. 이맘때면 발 디딜 틈 없던 베들레헴의 ‘예수탄생 교회’마저 텅 빈 복도에 촛불만 덩그러니 불 밝히고 있을 뿐이라고 외신들이 전했다. 불과 70㎞ 떨어진 가자지구에서 2만명 이상이 숨졌는데, 누구도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다.

이스라엘방위군은 성탄 직전인 23일(현지시각)에도 13톤의 폭발물로 30여개 터널을 폭파시키는 등 가자지구를 향한 공격을 거듭했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청은 개전 이후 23일까지 가자지구에서 숨진 이들이 모두 2만56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어린이가 8천명 이상인 것으로 전해진다. 가자지구에서는 연일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폭격 외에도 국경 통제로 인도주의적 물품 전달이 필요량의 10% 수준에 그쳐 고통이 극한에 이르고 있다. 식량, 물, 전기, 생필품, 모든 것이 부족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2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결의를 가까스로 채택했다. 그러나 애초 초안에 담겼던 적대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은 이스라엘의 동맹국인 미국의 반대로 최종안에서 빠졌다. 국제사회는 계속해서 휴전을 촉구하고 있으나, 미국은 앞서 안보리에서 제기된 두차례 휴전 촉구 결의안에도 거부권을 행사해 채택을 무산시킨 바 있다. 미국은 이러고도 ‘세계 평화’를 언급할 자격이 있는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오히려 결의안 통과에 불만을 나타내며 “전쟁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어린아이를 포함해 수많은 주민이 숨지는 등 말 그대로 학살을 당했는데, 아예 가자 주민들을 말살하려 하는가.

가자지구 220만명 중 대부분이 피란길에 올랐다. 예수도 2000년 전 유대왕 헤롯의 박해를 피해 마리아와 요셉이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 가던 중, 베들레헴 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예수도 난민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으로 온 것이다. 예수가 오늘 다시 이 땅에 온다면 그는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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