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 특별법)이 9일 국회를 통과했다. 특별법안은 지난해 6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상태였다. 연말부터 김진표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내고 합의를 유도했음에도 국민의힘이 끝내 법안 처리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사이 유가족들은 강추위 속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국회 주위를 오체투지로 돌며 법 통과를 호소해왔다. 만시지탄을 뒤로하고 이제라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은 여당 쪽 의견을 반영해 김 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을 수용했다. 총선 전 시행으로 정치쟁점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법 시행 날짜를 총선이 실시되는 4월10일로 못박았고, 조사위원회가 수사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 특검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삭제했다. 유가족 단체의 조사위원 추천권도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들과 협의해 추천하는 것으로 조정하고, 조사위 활동 기간 연장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였다. 유가족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특별법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자료 제출 요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두차례 이상 거부하면 조사위가 검찰·공수처에 영장 청구를 의뢰할 수 있다는 조항 등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조사의 기초인 자료를 확보할 수단조차 없다면 어떻게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겠나. 이번 특별법은 실효성 있는 진상조사 활동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들을 담고 있다. 이마저도 반대한다면 조사위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진상조사의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기에 탄탄한 조사가 이뤄져야만 이후 모호한 사실관계를 둘러싼 소모적·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있다. 그래야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과 사회적 합의도 끌어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정부·여당은 진상조사 활동을 어떻게든 훼방하면서 불필요한 정쟁을 키웠다. 또다시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특별법과 조사위 활동에 어깃장을 놓는다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정쟁화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조사위가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의 모범을 남길 수 있도록 국민적 의지를 모아야 한다. 그래야만 후진국형 참사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