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정은 “주적, 전쟁, 초토화” 말폭탄, 남북관계 현주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8~9일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대한민국 족속들을 우리의 주적”으로 단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을 향해 “주적” “전쟁” “초토화” 등 말폭탄을 쏟아냈다. 북한이 한국을 “주적”이라고 주장한 적은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지난해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한 데 이어 점점 더 거친 위협으로 긴장 수위를 끌어올리는 움직임이 매우 유감스럽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8~9일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대한민국 족속들을 우리의 주적으로 단정”하고, “대한민국이 우리를 상대로 무력 사용을 기도하려 들거나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려 든다면 (…)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한국을 ‘주적'이라고 직접 단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2021년 10월 연설에서 그는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뒤, 북한도 “남조선 괴뢰들이야말로 우리의 불변의 주적”(김여정 2022년 8월)이라며 거칠게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연말 김정은 위원장은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며 “근본적 방향 전환”을 했다.

김 위원장이 선을 넘는 거친 언어로 남쪽을 위협하는 것은 무모하고 유감스럽다. 외부의 적을 내세워 내부 결속을 다지고, 국제적으로는 러시아, 중국을 끌어들여 한·미·일에 맞서는 진영을 강화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은 올 한해도 핵·미사일을 증강하면서 노골적으로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 위협과 접경 지역에서의 군사적 도발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나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한·미·일 3국 안보협력’과 ‘힘에 의한 평화’만 강조하면서,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 정지나 맞대응 훈련 등은 가뜩이나 위태로운 남북 간 긴장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으로 효과적인 대응이 아니다. 정세 관리에 중요한 중국과의 외교를 방치하고, 러시아와도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는 것도 문제다. 북한이 무모할수록 한국 정부는 정세를 더욱 신중하게 관리하고,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외교를 통해 위기를 현명하게 바꿔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