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헌법에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하도록 지시했다. 지난해 말 한국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한 데 이어, 북한의 법과 제도에서 ‘민족’ ‘통일’ 관련 내용을 지우고 한국을 적대시하는 근본적 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김 위원장은 15일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헌법에 있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돼야 한다”고 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은 남북 당국의 첫 문서 합의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 명기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인데, 이 발언은 지난 50여년 동안 남북이 공유해온 통일 원칙을 폐기한다는 선언이다. 김 위원장은 경의선 철도·도로 등 남쪽과 연결된 통로와 대남 담당 부서들도 폐지하도록 지시했다. 평양에 있는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하는 등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김정은의 최근 움직임은 한반도의 남북에서 오랫동안 대화와 교류, 통일을 향해 노력해온 성과들을 모두 지우고, ‘핵전쟁’을 불사하는 군사적 위협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고 우려된다. 김 위원장이 선제공격은 않겠다면서도 전술핵 등을 기반으로 한국을 점령하겠다는 언사를 계속하는 것도 매우 심각한 일이다. 이런 북한의 전략적 변화는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충격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정세에 대한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한반도 평화를 지키고 상황을 관리해야 할 우리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북한이 도발한다면 우리는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이날 김 위원장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윤 대통령도 이를 “우리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을 균열시키기 위한 정치 도발 행위”라고 규정했다. 북한 도발 위험에 대한 단호한 대응은 필요하지만, 남북 모두 ‘강 대 강 충돌 불사’의 자세로 나서는 건 결코 현명하지 않다. 북한의 최근 일련의 움직임이 윤석열 정부의 강경 정책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윤 대통령도 이를 강경보수 결집에 활용하려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북한이 무모할수록, 정부는 상황 관리를 위한 차분한 대응과 다층적 외교에 힘을 쏟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