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대·기아차 그룹이 ‘머리 숙여’ 사과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편법 경영권 승계 통로가 돼 온 글로비스 주식을 조건 없이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투명경영, 윤리경영의 기틀을 마련하고, 하청·협력 업체와 상생하는 데도 힘쓰겠다고 했다. 총수 일가를 향한 검찰 수사고삐가 조여드는 시기에 나온 사과라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긴 하나, 어쨌든 잘못을 인정하고 부정하게 얻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나선 건 평가할 일이다.
하지만 할 바를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총수 일가의 재산을 불리는 데 동원된 다른 계열사 주식에 대해서도 이른 시일 안에 처리 방안을 내놓길 기대한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의혹을 깨끗이 해소하자는 차원”에서라는 현대차 그룹의 설명이 진심이라면 이는 당연한 절차다. 현대차 그룹이 거듭나기 위해서도 털 건 모두 털어내는 게 옳은 길이다. 어차피 그렇게 불려진 재산은 원래 총수 일가가 가져야 할 몫이 아니었다.
현대차 그룹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유보해둘 수밖에 없다. 재산 헌납액이 수천억원대라 해도 이는 잘못을 일부 치유한 것뿐이다. 진심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억울해 할 것 없다. 본질은 현대차 그룹이 정씨 집안만을 위한 기업이 아니라, 주주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거듭나느냐에 있다. 신뢰도 그런 모습을 실제로 보일 때 살아난다.
이젠 재벌이 불법과 탈법을 일삼다 문제가 되면 재산을 헌납하는 그릇된 관행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자면 재산 헌납이 법의 잣대를 구부리는 흥정물이 돼서는 안 된다. 법의 심판대에 올라 있는 삼성 그룹의 편법 경영권 승계와, 현대차 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떻게 매듭되는지가 시금석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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