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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미 FTA 협상내용 공개 요구는 정당하다

등록 2006-06-28 21:20

사설
그제 열리려던 ‘정부 합동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공청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회원 등 농민·시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공청회가 열린 마당이 되지 못한 건 아쉽다. 보수 언론들은 공청회를 힘으로 막은 농민·시민단체를 반민주적이라며 비난했다. 그러나 공청회가 무산됐다는 결과만 보기 전에, 왜 그리 됐는지 정부부터 곱씹어봐야 한다.

범국본 등의 요구 핵심은 ‘통합협정문 공개’였다. 1차 협상 내용도 공개 않고 무얼 갖고 토론하자는 거냐는 항변이다. 정부가 공청회를 요식절차로 삼으려 한다고 볼 만도 하다. “공청회 발언자가 협정 찬성론자 위주로 꾸려져 있는 등 실질적인 의견 수렴보다 공청회를 했다는 흔적을 남기려는 ‘알리바이 행사’가 되고 있다”는 범국본 관계자의 성토는 이런 분위기를 압축한다.

김종훈 협상 수석대표는 “협상 과정에서 제의하거나 제의받은 내용을 낱낱이 설명하면 우리의 전략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공개 요구를 거절했다.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주고받은 문서는 3년 동안 공개하지 않기로 미국 쪽과 약속한 바도 있다. 협정으로 지난한 처지에 빠질 수 있는 이해 관계자들에게 이런 정부 처지를 그대로 수용하고 따르라는 건 무리다.

우선 두 나라는 여건이 다르다. 미국은 통상협상 권한이 원칙적으로 의회에 있어 협상 단계에서도 의회의 강한 견제를 받는다. 또한 미국 통상법은 민간 이해 관계자들로 꾸려진 통상정책협상 자문위원회 등에 정부가 협상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언론 등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을 뿐, 협상 과정이 이해 관계자들에게 사실상 전달되고 논의되는 구조다. 반면에 우리에겐 이런 절차나 규정이 없어, 내용이 공개되지 않으면 정부 손에 협상이 맡겨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협상이 끝나면 협정문을 공개하겠다지만, 그때는 ‘버스가 지나간 뒤’다. 과거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등 통상협상을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정부 주도로 했다가 심한 갈등을 불렀던 전례를 반복할 뿐이다.

지금 공청회가 열린다면, 한-미 협정을 맺는 게 좋으냐 아니냐, 또는 어떤 모양의 협정이어야 하느냐는 식의 원론적 논란을 벌이는 자리에 그쳐선 안 된다. 협상 진전 상황을 놓고 격의 없이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논의가 오가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토론하자는 건 어불성설이다. 코끼리 발 정도만 보여주고 누가 몸통을 잘 그리는지 견줘보자는 것과 다를바 없다. 게다가 협상 시작 전단계에서부터 정부는 맡겨도 좋을 만큼 믿음을 주지 못했다. 오로지 협정 체결에 연연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상태”라는 말이 정부 관계자 입에서 서슴없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민주노동당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협정문 초안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전향적 결과를 기대한다. 이것도 안 되면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정부에 협상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고, 이를 토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면밀히 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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