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군기지 오염치유 문제가 한-미 동맹에 상처를 줘선 안 된다. 반대로 동맹을 내세워 그 부담을 떠넘겨서도 안 된다. 신뢰는 서로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가운데 돈독해지고, 동맹은 이런 신뢰 위에서 굳건해진다. 오염 치유를 놓고 요즘 미국이 보이는 일방주의적 태도가 신뢰의 바탕을 깨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4월 주한미군은 한-미 양국이 오염치유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토지반환실행계획을 일방적으로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지난달 말 주한미군 2사단 1지역사령관은 일부 기지를 한국에 넘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 간 협상이 잘 안 되면 군이 나서는 걸까. 주권국민으로서 불쾌하다.
환경오염과 관련해 국제적 원칙은 오염자 부담이다. 미국은 자국 안에서도 이 원칙을 적용해, 연방정부가 군기지의 오염원을 제거하고 치유한 뒤 해당 주정부에 반환한다. 1994년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내 반환예정 기지 터의 43%만 환경적으로 적합하고 57%는 치유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방정부는 오염치유를 위해 2004년까지 32조, 2032년까지 35조를 투입한다고 한다.
2011년까지 주한미군이 반환예정인 기지는 62개소이며 15개소 145만평에 대한 조사가 끝났다. 환경부는 5%에 해당하는 7만여평만 기름, 유해화학물질, 중금속에 오염돼 논밭이나 체육공원으로도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 57%(미국내 기지)와 5%(주한미군기지)의 차이는 주한미군 기지가 덜 오염돼서 그런 게 아니다. 인체유해 오염물질 기준을 미국의 1/5만 적용한 탓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토지오염은 책임지지 않겠다고 버텨왔다. 소파(주둔군지위협정)에 따르면 토지의 원상회복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 양국이 2003년 5월 채택한 합의서는 공동으로 조사하고 치유 방법과 수준을 정하면 미국 쪽이 드는 비용을 대는 것을 되어 있다.
미군이야 국익 차원에서 그런다고 치자. 우리 부처의 태도는 한심하다. 환경부는 원칙대로 오염자 치유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외교부와 국방부는 한-미 동맹을 강조하며 양보를 종용한다. 신뢰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가보다. 아니면 오염치유 비용 5천억원만 쏟아부으면 동맹이 든든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강압적 관계는 언제나 경멸과 분노만 키운다는 걸 왜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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