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결국 우리 정부의 무능을 또한번 국민에게 보여줬다. 토양과 지하수를 유독물질로 더럽힌 채로 사용하던 군사기지 15곳을 반환하겠다는 미국의 뜻을 국방부가 그대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수천억원의 환경정화 비용을 이들 기지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내린 정부의 결정이다. 정부는 환경부와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저돌성을 보였다.
정부가 어떤 이유로 지하 기름탱크 제거와 같은 기초적 작업만으로 미국 정부에 면죄부를 줬는지 국민은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이나 한국 두루 환경정책의 기본은 오염자 부담 원칙이다. 환경오염을 저지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제도다. 그러나 유독물질로 우리의 땅과 지하수를 오염시킨 장본인인 미군은 그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당당히 주장하고 우리 정부는 그런 황당한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특히 미군이 반세기 동안 폭격연습장으로 사용해 온 매향리 사격장은 환경오염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환 기지에 포함됐다.
이는 미국 법과 한국 법을 모두 무시하는 불법적인 처사다. 미국에서는 유독물질로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가 사람과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25년 전부터 연방정부가 이런 지역을 막대한 세금을 투자하며 직접 관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조처를 더욱 빠르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는 개혁 작업을 1993년부터 시행하며, 오염을 일으킨 당사자에게 경제적으로 막대한 책임을 지우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원칙과 제도도 미국 국민한테만 해당된다. 약소국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오염행위도 그 나라 국민에게 당당하게 떠넘기고 있다. 이번에는 그 바보스러운 대상이 우리 국민이다.
힘이 없는 약자일수록 치밀한 전략과 긴밀한 협조로 대응해야 함에도 환경정책을 책임지는 부처의 의견이 일방적으로 무시되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국무조정실, 집권 여당은 무슨 일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가 어려워 가장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에서 우리 국토가 죽음의 땅으로 변한 것만으로도 기가 막히는데, 복구비용 수천억원까지 대신 부담해야 하는 국민은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나. 국제적으로 봉 노릇을 하면서도 정작 국민은 무시하는 정부를 언제까지 쳐다보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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