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심은 물론 달동네와 시골 읍내까지 성인오락실이 넘쳐난다. 멀쩡한 가장과 주부들이 생업을 내팽개치고 오락기 앞에서 대박을 꿈꾼다. 업주들은 온갖 탈법과 불법으로 이를 부추기고, 엄청난 수익금은 기업화한 조직 폭력배한테 흘러간다.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최근 몇 해 사이 급증한 사행성 도박장이 위험 수위를 한참 넘어섰다. 뒤늦게 정부가 등록제 전환 등 고강도 대책을 내놨지만 별 소용이 없다. 지금도 곳곳에서 개업만 하면 문전성시이고, 불법·탈법 영업도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업주들은 “그동안 몇 차례나 법이 바뀌고 집중단속을 했지만 이렇게 장사를 계속하고 있지 않으냐”며 대놓고 비웃는다.
엄연한 도박 행위를 게임으로 규정하고 부추긴 건 바로 정부였다. ‘건전한 게임·문화산업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경품용 상품권까지 만들어가며 사설 도박을 사실상 합법화했다. 문제가 되면 불법 영업을 하는 업주와 경찰의 단속 부진 탓으로 떠넘겨 왔다. 그 결과 성인오락실은 불과 5년여 만에 1만5천여곳, 성인피시방은 4천여곳으로 급증했다. 카지노바와 인터넷 도박게임도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경품용 상품권 시장은 무려 22조원, 한해 정부 예산의 15% 규모로 불어났다. 그 폐해는 재론할 필요도 없다. 오죽하면 사설 도박 때문에 가정이 파괴된 피해자들이 성인오락실 폐지 청원 운동까지 벌일까.
단지 오락기의 사행성을 최소화하고 영업장 규제와 단속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멀쩡한 오락기도 몇 시간이면 수백만원짜리 베팅이 가능하도록 개·변조할 수 있다. 〈한겨레〉 취재진이 불법 환전 등 불법 영업장 35곳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단속에 걸린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경찰 간부조차 “이젠 군대를 동원해도 통제가 불가능한 지경”이라고 탄식한다.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정부는 과연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게임산업 육성책의 방향과 철학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평범한 서민들의 사행성을 부추기고 도박산업만 살찌운 결과를 단순히 정책 부작용쯤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나아가 자라는 아이들이 갈수록 컴퓨터 모니터에만 매달리는 게 과연 자랑할 만한 ‘게임강국’의 모습인지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미래 성장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명분과 성과에만 매달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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