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등급위원회가 성인오락실용 게임기 심의를 주먹구구식으로 해옴으로써 도박성 게임을 막는 구실을 제대로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3년 6개월 동안 영등위는 6757건의 게임을 심의해 절반이 넘는 3508건을 성인용으로 통과시켰다고 한다. 일주일에 평균 37건을 심의해서 23건을 성인물로 통과시킨 셈이다.
게임 심의 과정을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상황은 더욱 한심하다. 일주일 평균 37건을 심의하는 데 관여하는 실무 인원은 고작 10여명이다. 게임을 전공했거나 관련 업종에 종사했던 예심 위원 7명이 1차로 검토해 소위원회에 넘기면 7명의 소위 위원이 사실상 최종 결정을 내린다. 소위 위원들 대부분은 교수나 변호사, 기자 등 본업이 따로 있는 이들이다. 날로 지능적으로 발전하는 게임을 이들이 제대로 검토하길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다. 최종 결정 책임을 지는 본 위원들 가운데도 게임을 알 만한 이가 거의 없다. 심지어 영등위조차 “영업방식, 게임물의 가변적 속성 등의 요인으로 인하여 기술적인 부분까지 검토해야 할 단계”라고 스스로 한계를 시인하는 지경이다.
게다가 문화관광부에서 사행성 게임을 허가하지 말아 달라고 몇차례나 요청했으나 영등위가 이를 묵살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영등위는 제대로 심의할 역량도 갖추지 못한 채 관련 부처의 의견조차 경청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독립 민간기구인 영등위에 정부가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사행성 게임이라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문화관광부 또한 의견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책임을 피할 순 없다. 처음 문제가 됐을 때 곧바로 사후 실태조사를 벌이고 영등위를 적극 설득함으로써 사태가 반복되는 걸 막았어야 한다.
정부는 게임 심의의 전문성을 고려해 조만간 게임물등급분류위원회를 따로 둘 예정이다. 하지만 이 기구의 준비위원회에 오락기 심의로 문제가 됐던 전직 영등위 관계자를 위촉함으로써, 문제 해결 의지를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이제 게임 심의 문제는 일부 관계자들에게만 맡겨둘 단계를 벗어났다. 지금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성인오락실 게임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많이 즐기는 온라인 게임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시민사회단체나 학자를 비롯해 사회 전체가 게임 심의에 적극 개입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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