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끔찍하면서도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6가크롬은 아토피성 피부질환이나 천식, 기관지염은 물론 폐암, 위암까지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다. 실화를 다룬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보듯 미국의 한 마을 주민 전체가 암에 의한 집단적 사망, 유산 등의 불행을 겪은 원인이 바로 6가크롬이었다. 이런 맹독성 물질이 우리나라에서 제조된 시멘트에 다량으로 들어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많은 양의 시멘트를 아파트, 학교, 병원, 상가, 사무실, 도로 등에 사용하고 있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모든 국민이 치명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국내산 시멘트에 맹독성 중금속이 높은 까닭은 자원 재활용이라는 명목으로 유독물질이 다량 함유된 산업 부산물이나 폐기물을 시멘트 부원료와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 폐기물을 사용하지 않은 중국산보다 무려 170배나 높은 양이 검출됐다. 산업 폐기물을 섞는 일본 제품보다도 세 배 이상 많은 양이 검출된 까닭은 일본은 시멘트의 6가크롬 함량을 이미 1998년부터 법적으로 관리해왔으나 우리는 기준조차 없기 때문이다.
시멘트 제조공정에 산업폐기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99년 8월 폐기물관리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곧, 일본이 시멘트의 6가크롬 기준치를 정한 다음해의 법안 개정 작업에서부터 국민 건강은 완전히 무시됐고 지금까지 7년간이나 무방비 상태로 사용됐다. 도시의 생활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장 배출가스는 15개 항목인 데 비해 시멘트 공장 소성로는 각종 유해물질 범벅인 산업 폐기물을 태우는데도 불과 4개 항목으로 관리해오고 있다. 더욱이 지난달 환경부가 입법예고한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에는 오히려 시멘트 소성로의 염화수소 배출허용기준을 완화하고 있다. 원칙과 목표가 없는 환경정책이 대한민국 시멘트 소성로를 국제적 유독성 쓰레기의 처리장으로 전락시켜 1년에 50만t 이상의 유해 폐기물이 수입되고 있다.
정치인과 관료들의 무책임과 무관심으로 국민들은 병들어가고 있다. 1차적 피해자는 시멘트 공장 주변 주민이다. 국립암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시멘트 공장이 밀집된 강원도 영월군 서면에서 후두암 발생이 전국 평균보다 세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밝혀져 우려된다.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이들이 방치돼서는 안 된다. 지역 주민의 건강상 안전 대책과 보상체계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또한 단순히 6가크롬 기준만 추가하는 땜질식 처방에 그칠 게 아니라 시멘트 소성로와 시멘트 제품이 국민 건강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종합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정부의 생명경시 풍조와 경제우선 사고방식으로 보아 유사한 사건이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99년 당시 법 개정 작업부터 현재까지 국민 건강이 도외시돼 온 경위를 철저히 점검해 엄중한 책임 추궁이 이뤄져야 하며, 중요한 정책목표를 상실한 채 결정되는 정책도입 과정상의 미비점을 꼼꼼히 보완해야 한다. 또한 99년 이후 지어진 모든 시멘트 건물의 노후화로 인한 중금속 중독 위험 증가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 마련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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