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화당의 패배로 끝난 미국 중간선거 이후 이라크 정책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이 미국을 비롯한 참전국들 사이에서 전개되고 있다. 특히 이라크내 시아파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시리아와 이란을 이라크 문제 해결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미국과 함께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란과 시리아를 배제하고는 이라크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미국 정부에 두 나라와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블레어의 주장에 역시 주요 참전국인 오스트레일리아가 동조하고 나섰고,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정책을 제언할 미국내 초당파 이라크연구그룹도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조응해 이라크를 방문한 시리아 외무장관이 이라크 안정화에 협력할 의사를 밝혔고, 이란 역시 미국과 대화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은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 퇴임 이후 그동안 억눌려 왔던 현실주의 외교론이 미국과 주변국에서 힘을 얻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잘 알다시피 부시 행정부는 이란·시리아·북한 등에 대해서 악의적 무시정책을 취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에 이른 과정에서 보듯이, 이 정책은 해당 지역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긴커녕 오히려 더 큰 안보불안 상황을 낳고 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자 미국 정부가 이들 정부와 대화에 나서는 건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대화는 이라크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중동 정책 전반을 재검토하는 것까지 포함해야 한다. 이라크를 비롯해 팔레스타인·레바논, 이란 핵문제 등 중동문제의 근원은 미국의 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현실주의 외교노선 선회와 더불어 한국 정부의 중동정책도 현실주의에 입각해야 한다. 정부는 자이툰 부대의 주둔연장을 대북·대미 정책과 연동시켜 생각하는 모양이나, 자이툰부대 파견이 한-미 관계나 미국의 대북정책에 생각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긴 어렵다. 미국의 핵심 맹방을 자처하는 일본이나 영국도 부대를 철수하거나 철수계획을 밝혔고, 미국 안에서조차 단계적 철수론이 나오는 마당이다. 우리만 주둔 연장을 밝힐 경우 아랍국과의 관계에서 입을 외교적 피해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더 주저하지 말고 자이툰부대 철수계획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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