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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역사의 평가는 법 위에 있다

등록 2007-01-30 07:47수정 2007-01-30 08:00

사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시절 ‘긴급조치’를 근거로 판결을 내린 법관들의 명단을 오늘 우리가 보도하는 것은 ‘마녀사냥’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권력자의 뜻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는 법원 판결조차 당시 권력한테는 저항으로 비쳤을 수도 있다. 폭압적인 권력 앞에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지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판결에 면죄부를 줄 수가 없다. 저마다 자리에 걸맞은 역사적 책임이 있는 까닭이다. 단지 권력에 거슬렸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 참기 어려운 고통을 겪은 이들과 목숨을 걸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운 이들을 생각하면 우리에겐 면죄부를 줄 권리조차 없다.

형식논리로만 따지면, 그 시절 긴급조치는 헌법에 근거를 갖고 있었고 법률과 같은 효력을 지녔다. 그러나 긴급조치 자체가 “헌법에 규정돼 있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는 헌법 파괴적인 것임을 법률 전문가인 판사들이 몰랐을 리 없다. 오죽하면 그 시대를 ‘긴급조치 시대’라고 불렀겠는가. 늦었지만 당시 법관들은 이제라도 자신의 ‘양심’을 걸고 그 판결들이 옳았는지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긴급조치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사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8%는 단지 박정희 개인이나 유신체제를 비판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기소된 이들 대부분이 옥살이를 했으며, 조사 과정에서부터 모진 고통을 겪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같은 사법살인과, 그에 버금가는 판결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런 판결을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 탓으로 돌리는 법관은 스스로를 ‘법률 기계’였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우리 또한 후손들에게 도덕적 허무주의를 물려주게 될 것이다.

많은 전현직 사법부 고위간부들의 이름을 명단에서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쩌면 명단에 없는 이들도 운이 좋아 오욕을 피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먼저 사법부 전체가 지난날을 반성하고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개별 판결에 대한 비난은 신중해야 한다.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경우와, 단지 저항하지 않은 것은 책임의 크기가 다른 까닭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반성과 용서와 화해다. 그리고 “역사의 평가는 실정법 위에 있다”는 진리를 우리 모두 가슴에 깊이 새기는 것이다. 다시는 그런 비극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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