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낸 김유찬씨가 어제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1996년 위증 교사’와 관련해 이 전 시장 쪽에서 받았다는 예상 질문지와 함께 1억2050만원을 받은 날짜와 장소 등을 공개했다. 이 자료들이 객관적인 증거로는 미약한 게 사실이다. 통화 녹음 테이프에는 돈 준 것을 시인하는 명확한 내용이 없으며, 돈 내역서도 기억을 되살려 최근에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오래 된 일이라 기억에 착오가 있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이아무개 보좌관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시점이 이씨의 수감기간과 겹치는 점도 석연찮은 대목이다.
그러나 증거가 미약하고 진술에 허술함이 있다고 해서 위증 교사와 살해 위협을 받았다는 김씨의 주장이 완전히 거짓이라고 현재로서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사건 당사자가 새롭고 중대한 내용을 자발적이고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내용은 대선주자의 도덕성과 직결돼 있다. 사실이라면 이 전 시장의 대선주자 자격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고, 반대로 이 전 시장 쪽 주장대로 사실무근이라면 유력한 대선주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넘어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려는 의도적이고 중대한 반민주주의적 행위가 된다.
정확한 사실과 진상이 가려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씨와 이 전 시장 참모들 사이에서만 진실 공방을 벌일 일이 아니다. 우선 한나라당 경선준비위가 이번 논란을 다루기로 한 만큼 주저하거나 어물어물하지 말고 철저하게 진상을 캐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수사권 없는 정당 기구가 제대로 진실을 밝힐지는 의문이다. 사법기관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조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더구나 이번 사안은 정당 내부의 일이 아니라 이미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불필요한 소모전 등에 대한 이 전 시장 쪽의 우려를 이해할 수 있지만, 유력 후보로서 당장의 손익보다는 국민적인 의혹을 해소하고 검증을 받는 게 더 중요하다. 떳떳하다면 명예훼손 고소 등의 조처를 못할 것 없다.
무엇보다 이 전 시장의 분명한 태도 표명이 있어야 한다. 김씨의 국외 도피를 지시했는지, 위증을 요구했는지, 대가로 돈을 줬는지 등에 직접 답해야 한다. 구체적인 문제를 두고 “웬만한 것은 웃음으로 대신하겠다”고 대충 넘어가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