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식 협상 일정이 끝났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엄청난 후유증을 치유해야 하는 새로운 시작이다. 국민적 공감대도, 철저한 준비도 없이 시작된 협상은 일 년 동안 우리 사회를 극단적으로 분열시켰다. 그 책임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현정부에 있다.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분열과 갈등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이렇듯 국론이 분열된 사례도 드물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면 수구좌파 또는 폐쇄적 반미주의자로, 찬성하면 숭미주의자나 신자유주의자로 낙인찍는 극단적 재단이 횡행했다. 정부가 다른 의견엔 귀기울이지 않고 협상을 밀어붙인 탓이 크다. 노 대통령 특유의 이분법적 발언도 분열을 증폭시켰다. 우리 경제가 폐쇄체제가 아님은 자명한데도, 반대론에 “쇄국주의로 돌아가자는 말이냐”라고 맞받아친 게 대표적이다. “국내 이해단체의 저항 때문에 못 가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해야 하며 …”란 말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의 삶에 끼칠 파장을 걱정하는 목소리조차 쇄국론이나 이해단체의 항변으로 깎아내리니, 반발심이 커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 졸속 추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어디 일각의 외침이었던가. 국민의 절반 가량이 반대하고, 민주화가 이뤄진 이래 이만큼 광범위하게 시민·사회단체들이 뭉친 사례도 거의 없다. ‘한-미 에프티에이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만 봐도 농민단체는 물론이고 민주노총·참여연대 등 300여 단체가 참여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 깊어졌다. 경제적 실익이 최우선이라든가, 손해보는 장사는 안 하겠다는 다짐은 구두선이었고, 시종 미국에 내주기만 한 협상이었다. 노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다음 어느 쪽이 정권을 잡아도 안 할 것 같았고 정치적으로 손해 가는 일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은 노무현밖에 없다고 저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에” 협상을 시작했다고까지 했다. 소신과 의지도 필요하지만 언제나 옳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고 때론 위험하기까지 하다. 비약이라 할지 모르나, 과거 전체주의에서도 지도자의 지나친 자기 확신이 있었다.
지금 절실한 건 갈라진 국론을 추스르는 일이다. 진보와 보수 진영이 날카롭게 맞서고, 각 진영 안에서도 갈라지고 반목해서는 우리 경제가 국제경쟁에서 배겨날 수 없다. 초심에서 그리고 냉정하게 사안을 바라보는 데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내용과 상대가 어떻건 자유무역협정만이 살 길이라고 강변할 게 아니라, 그에 앞서 정부부터 내용을 따지고 대안을 찾는 열린 정책을 펴지 않으면 갈등 해소는 난망하다. 유럽연합(EU),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 협상도 예정돼 있다. 이번 협상 과정을 반면교사로 삼아, 충분한 여론 수렴과 연구 등 준비를 거쳐 협상해야 한다. 협상 과정에서 국회와 이해 관계자의 의견 반영 등을 담보할 법과 제도 정비도 시급하다. ‘알아서 잘 할 테니 따라만 오라’는 식은 더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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