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가 노동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일반 조합원들에게는 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기륭전자㈜가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소송에서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지난 4일 회사 쪽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한 것이다.
앞서 법원은 지난 4월 같은 회사 노조 간부들을 상대로 한 회사 쪽의 손해배상 청구도 기각했다. 그러나 당시 판결의 근거는 회사 쪽의 손해 발생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일반 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다툰 이번 소송에서 법원은 불법 쟁의행위를 기획·지시·지도하지 않고 단순 참가한 조합원에게는 공동 불법행위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판례들과 달리 쟁의행위가 불법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일반 조합원들에게는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본 것은 의미가 크다.
노동자의 단결권은 헌법상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돼야 하는데, 일반 조합원에게 쟁의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일일이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의 단결권을 해칠 수 있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또 일반 조합원이 노조 및 노조 간부들의 지시에 불응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 보면, 단순히 쟁의행위에 참가했다고 해서 노조나 노조 간부들과 함께 공동 불법행위 책임을 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9월 대법원이 태광산업㈜ 사건에서 같은 법리를 언급하면서도 준수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동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했던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새로운 법리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동조합의 파업을 두고 우리나라처럼 수배·구속, 경찰력 투입 등 형사상의 다양한 억압 수단과 함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까지 포괄적으로 적용하는 경우는 없다. 한 나라의 장관이 “철도 파업으로 인한 영업손실분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회사가 입은 경제적 손실을 일반 민사사건의 채권·채무와 같이 취급하여 배상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상의 단체행동권을 무력화시킨다. 이번 판결이 그런 전근대적인 일을 없애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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